나의 시 133 그런 소시민
나의 무비즘 (118), 이미지즘 (10)
2012-02
박석준 /
그런 소시민
눈 밟는 소리, 컴컴한 어둠 속 시동 소리, 깜박이는 빨간 헤드라이트 빛이 새벽을 지나간다.
일요일 아침, 관리실 옆 어린이 놀이터엔 사람 소리가 없다.
라면을 먹는데, 하얀 눈 위에 떠 있는 빨간색 미끄럼틀.
섭씨 44도 습도 70도에서 숙성하면 고기가 가장 부드러워진다는데, 안심 등심 등 부위별로 나누어 밤에만 판다는데…….
미국 고깃집의 소리를 내는 TV.
7시 40분. TV 위 벽시계 애매하게 갈라선 바늘들의 선, 창밖을 보니 직선들 너머 파란 하늘이 있다.
차 지붕보다 초록 나무 잎의 눈이 먼저 다 녹아 사라지고 있다.
8시나 되었을까, 원통 실은 트럭이 움직인다. 1층 베란다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다시 시를 보다가 눈에 피로를 느낀 ‘그런 소시민’이 거실에 드러눕는다.
* 그런 소시민 : 이은봉 시집 『첫눈 아침』(2010)에 실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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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원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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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12-02. 광주시 푸른마을 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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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글 「그런 소시민」은 매우 선명한 이미지를 발산하는 표현을 사용한 이미지즘 경향을 보여준다. “눈 밟는 소리, 컴컴한 어둠 속 시동 소리, 깜박이는 빨간 헤드라이트 빛”/“하얀 눈 위에 떠 있는 빨간색 미끄럼틀”/“고깃집의 소리를 내는 TV”/“초록 나무 잎의 눈이 먼저 다 녹아 사라지고 있다.”가 그 예들이다. 그리고 이 글은 시각적인 움직이는 서술어를 사용하여 인물을 따라 시공간이 흘러가게 하고 독자에게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무비즘 기법이 사용되었다. “빛이 새벽을 지나간다.”/“녹아 사라지고 있다.”/“트럭이 움직인다.”/“드러눕는다.”
그러나 자본주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그저) 그런 소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줄 뿐, 특별한 메시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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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 노트
나(박석준)는 2012년 2월 어느 날 눈 내린 창밖 풍경을 보고는, 방학 기간이어서 시를 써보려고 노트를 펼쳐놓고 엎드려 글을 써갔다. 그런데 만족스러운 글을 쓰기 어려워서 베란다로 가곤 했다. 베란다에선 창밖을 내다보았다. 시동 소리도 듣고, 눈 밟는 소리도 듣고 어린이놀이터 미끄럼틀도 보고 눈 녹아가는 것도 보고, 거실에선 미국 고깃집 방송도 듣고 시계도 보았는데, ‘시를 보다가 창밖을 보는’이라는 제목으로 몇 줄 적어놓고는 만족스럽게 쓰지 못한 채 거실에 누워버렸다. 그렇지만 글을 써간 시간엔 나에게 이날 실제로 일어난 일과 생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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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2) 2012-04-30
시를 보다가 창밖을 보는
눈 밟는 소리. 플래시로 빛을 내며 컴컴한 새벽 아파트 경비원이 경비를 돌고 있다. 직선을 돌고는 사라졌다.
일요일 아침, 관리실 옆 어린이 놀이터엔 사람 소리가 없다.
라면을 먹는데, 하얀 눈 위에 떠 있는 빨간색 미끄럼틀.
섭씨 44도 습도 70도에서 숙성하면 고기가 가장 부드러워진다는데, 안심 등심 등 부위별로 나누어 밤에만 판다는데…….
미국 고깃집의 소리를 내는 TV.
7시 40분. TV 위 벽시계 애매하게 갈라선 바늘들의 선, 창밖을 보니 직선들 너머 파란 하늘이 있다.
차 지붕보다 초록 나무 잎의 눈이 먼저 다 녹아 사라지고 있다.
8시나 되었을까, 원통 실은 트럭이 움직인다. 1층 베란다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다시 시를 보다가 눈에 피로를 느낀 ‘그런 소시민’이 거실에 드러눕는다.
* 그런 소시민 : 이은봉 시집 “첫눈 아침”(2010)에 실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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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00:43.메.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2년9월22일-1.hwp (초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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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12-02-24
시를 보다가 창밖을 보는
시원하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찌는 여름 햇볕, 뜨거운 하늘
스치는 바람
몽툭하게 하늘을 가르고 선 20층 아파트 사이로 희뿌옇게 겨울 새벽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밤 살며시 차갑게 달라붙으면서 눈이 휘말렸지
시를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가
콧속이 시큰하여 코를 풀어놓고는
춥다. 창밖 아파트 사잇길 주차장 차들 지붕에 하얗게 눈이 덮여 있다.
추워도 살아 있다. 살아 있어서
날이 새면 흐릿해도 어둡지 않은 세상.
선들이 몸체를 드러냈다. 직선이 직각을 이루는 아파트
하얗게 눈이 덮은 곡선 원통들, 그것들을 실은 트럭. 사잇길에 주차된 채 창가 초록 나무들에 앞부분이 가려져 있다. 초록 나무들 잎들 끝에 눈이 붙어 있다.
검은 잠바를 입은 경비원이 사잇길을 걸어가고 있다.
오 마이 갓
토요일 어제 오후 뛰어가다가 넘어져 소리 내던 쪽으로
얼마 후 다시 나타나선 또 넘어져
재빨리 일어서면서 렛스 고우
소리 지르던 쪽으로
문방구에 갔다 왔는지 아홉 살이나 됐을 그 소년이 총을 들고 뛰어갔지.
일요일 이른 아침 관리실 옆 어린이 놀이터, 미끄럼틀 빨간색, 사람 소리가 없다.
섭씨 44도 습도 70도에서 숙성하면 고기가 가장 부드러워진다, 안심 등심 등 부위별로 나누어 밤에만 파는데……. TV가 미국 고깃집 소리를 낸다. 조반을 먹는데 7시 40분. TV 위 벽시계 애매하게 갈라선 바늘들의 선
직선들 너머 파란 하늘이 있다. 20층 위 꼭대기 네모진 것들이 문을 단 채 하얗게 반사되고 있다.
창밖을 보니 차들은 그대로 있고
초록 나무 잎의 눈이 먼저 다 녹아 사라지고 있다. 8시 25분이다. 1층 베란다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는 다시 시를 보다가
눈에 피로를 느낀
‘그런 소시민’이 거실에 드러눕는다.
* 그런 소시민 : 이은봉 시집 “첫눈 아침”(2010)에 실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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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03:06.메. 박석준-시집(이은봉교수).hwp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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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광주시 푸른마을. 나의 집 베란다에서. 20200217_13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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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푸른마을. 나의 집 베란다에서. 20200217_13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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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푸른마을. 나의 집 베란다에서. 20200217_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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