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00 벽 속에
나의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13), 나의 무비즘 (88)
2007-11-14
박석준 /
<원작>
벽 속에
벽 속에 소리와 형상을 가두고 벽 속의 현실을 체험한다.
벽 속에는 내 수첩 패스워드가 들어 있다.
퇴근하여 길을 걷는다.
벽 속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희미해진다.
봄과 겨울이 사라지고 있는
오늘, 11월, 인상 두 개가 흔들린다.
원어민 여자, 출근 직후
자기 자리에 앉아 빵을 먹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두 손으로 빵을 감싸 안는다.
하이 메리! 스물일곱이라는 그녀에게
올봄에 딸을 잃은 남자가 말을 건다.
벽 속에는 소리가 있다.
벽 속에선 내 발걸음이 세상에서 사라진 날에도
불타지 않을 소리가 인다.
벽 속에는 이상(李箱)이 낚지 못한
안 열리는 문, 집의 첨탑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포토처럼 가을이 지나간다. 2007년 벽 속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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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4 ∽ 2009-03-03 오후 10:06. 박석준-나의시론(논문).hwp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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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2007-11-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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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무비즘으로 실현된 아방가르드와 이중적 낯설게 하기
나는 <시대를 따라간 인물의 재생>이라는 글에서 「13인의 아이의 하나가 거리에서 떠나서」에 이어진 글로 「벽 속에」를 썼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벽 속에」 또한 이상의 시어를 차용하고 있다. 그의 「가정」에 “안열리는문”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벽 속에」에서 “벽 속에는 이상(李箱)이 낚지 못한/안 열리는 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표현으로 ‘(문을) 열다’를 ‘(문을) 낚다’로 치환했다. 까닭은 이상이 들어가고 싶은 곳은 실제의 집(가정)이어서 ‘(집 문을) 열다’가 적절하겠지만, 내가 들어가고 싶은 곳은 “벽 속”, 즉 ‘(컴퓨터의) 인터넷 속’이고 그곳에서 ‘정보’를 낚고 싶기 때문이다.
한데 「벽 속에」는 낚고(찾고) 싶은 정보뿐만 아니라 내가 숨기고 싶은 정보도 있어서 나는 “패스워드”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도 살아남아야 할 중요한 “나”를 미리 벽(컴퓨터) 속에 넣어둔 것이다.
그리고 아침부터 빵을 먹는 “원어민”, 원어민을 건드려보는 “올봄에 딸을 잃은 남자”를 앞에 깔아놓음으로써 나는 나의 중요한 정보를 가려버린다. 하지만 이 글 자체가 나의 삶의 일부이므로 이 글은 세상을 떠난 뒤의 살아남아야 할 나를 미리 보여주고 있다는 교묘한 구도와 패러독스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요약한 글 「벽 속」에서 이런 의도를 알아낼 수 없다.
이 글은 이상의 「가정」처럼 아방가르드 경향으로 창작한 것이다. 「가정」은 띄어쓰기 안 함, 행 나누기 없는 산문형 표현 등 당시 시문학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형태상 낯설게 하는 표현으로 ‘화자의 답답한 심정’을 형태적으로 암시하는 데 성공한 아방가르드 작품이다. 나의 글은 형태를 전통적 방식(행 나누기, 연 구분)으로 유지하면서도 인물이 시공간을 흘러가는 무비즘의 경향과 내용상으로 낯설게 하는 아방가르드 경향이 섞인 글이다. 이 점이 이상의 「가정」이라든가 여타의 아방가르드 경향(또는 다다이즘 경향)의 글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시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나의 글에 담긴 요소이다.
이 글 「벽 속」에 표현된 “봄과 겨울이 사라지고 있는/오늘은 11월, 인상 두 개가 흔들린다.”, “벽 속에선 내 발걸음이 세상에서 사라진 날에도/불타지 않을 소리가 인다.”는 내용상 ‘이중적 낯설게 하기’에 해당한다. “벽 속에 소리와 형상을 가두고 벽 속의 현실을 체험한다./벽 속에는 내 수첩 패스워드가 들어 있다.”(「벽 속에」)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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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요약 개작>_(시집)
벽 속
퇴근하여 길을 걷는다.
벽 속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희미해진다.
봄과 겨울이 사라지고 있는
오늘은 11월, 인상 두 개가 흔들린다.
원어민 여자, 출근 직후
자기 자리에 앉아 빵을 먹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두 손으로 빵을 감싸 안는다.
하이 메리! 스물일곱이라는 그녀에게
올봄에 딸을 잃은 남자가 말을 건다.
벽 속에는 소리가 있다.
벽 속에선 내 발걸음이 세상에서 사라진 날에도
불타지 않을 소리가 인다.
벽 속에는 이상(李箱)이 낚지 못한
안 열리는 문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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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4 ∽ 2009-03-03 <원작>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원작 요약 개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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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2) 2007-12-04
벽 속에
벽 속에 소리와 형상을 가두고
벽 속의 현실을 체험한다.
벽 속에는 내 수첩 패스워드가 들어있다.
퇴근하여 길을 걷는다
벽 속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희미해진다.
봄과 겨울이 사라지고 있는
오늘, 11월, 인상 두 개 흔들린다.
원어민 그 여자, 출근 직후
자기 자리에 앉아 빵을 먹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두 손으로 빵을 감싸안는다.
하이 메리!
스물일곱이라는 그녀에게
올봄에 딸을 잃은
남자가 말을 건다.
벽 속에는 소리가 있다.
벽 속에선
내 발걸음이 세상에서 사라진 날에도
불타지 않을 소리가 인다.
벽 속에는
이상(李箱)이 낚지 못한
안 열리는 문, 집의 첨탑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포토처럼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2007년 벽 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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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22:33.메. 길을 걷다 보면.hwp (초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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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1) 2007-11-14
벽 속에
벽 속에 소리와 형상을 가두고
벽 속에서 현실을 체험한다.
벽 속에는 두고 온 내 수첩 패스워드가 있다.
퇴근하여 길을 걷는 나
머리는 희미하지만.
봄과 겨울이 사라져 가는
오늘, 11월, 인상 두 개가 흔들거린다.
원어민 그 여자는 출근 직후
자기 자리에 앉아 빵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두 손으로 빵을 감싸안았다.
하이 메리
스물일곱이라는 그녀에게
올봄에 딸을 잃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벽 속에는 소리가 있다.
벽 속에선
세상에서 내 발걸음이 사라진 날에도
타지 않을 소리가 난다.
벽 속에는
이상(李箱)이 낚지 못한
안열리는문 집 첨탑이 숨어들었을지 모른다
포토처럼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2007년 벽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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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4 (초고1)
= 2007-11-15 오후 10:24. 서정시의 이론.hwp (초고1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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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
가정(家庭)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에더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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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청년』 34호(193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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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감상
이 시는 현실과 자아의 불화를 표현하고 있다. 띄어쓰기 없이 산문적 리듬을 통해 시적 의미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집안에 생활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생활이 모자란다는 말은 가족의 생계가 여유롭지 못하거나 정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형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집안의 생활이 모자란 것은 ‘나’ 때문이라는 사실이 암시되고 있다. ‘나’는 밤의 사나운 꾸지람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초조와 불안감을 가지지만, 가족들의 꾸지람에 대한 걱정 또한 ‘나’의 초조와 불안을 심화한다. 즉 화자는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들어가기 힘든 상황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립의 양상이 이 시의 반복과 비유, 대응의 구조 속에서 변주되고 심화되고 있다.
성격: 상징
표현상 특징:
화자의 답답하고 절망적인 심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무시함.
연과 행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시의 구조를 무시하는 등 파격적인 시 형태를 실험함.
화자의 내면을 독백으로 강렬하게 드러낸 작품임.
https://blog.naver.com/36hjs/220513956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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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 2005-11-05. 광주시. PHOTO051105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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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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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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