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85 발을 다쳐서
나의 초현실주의 (5), 실존주의 모더니즘 (39), 나의 무비즘 (72)
2006-01-20
박석준 /
(원작 교정) (심사가./단어교체: 샛맑아)
발을 다쳐서
― 마음과 시공간의 잔상 4
여기 돈 넣어둘게요.
유리컵 속으로 백원짜리 오백원짜리 동전 몇십 개를 넣어
누워 있는 어머니께 드리고 창고 옆 좁은
빈 곳으로 간다.
슬퍼서
노래 부르는데, 동생이 애절한
마디를 따라서 부른다.
누나가 곰팡 난 무를 물로 씻어내자
일거리 없어 주방에서 내가 나왔지만
옆방 배불뚝이 남자와 부딪칠까 봐
방문 앞에서 시선이 돌아간다.
이사 왔다는 부부인지 마루 앞 평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다.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TV 소리와 버무려져
내용 알 길 없다.
남자 노랫소리가 간드러지게
구부려지면서 애절하다.
트롯 목소리가 구슬프구나. 맑지만
욕구 충족이 안 된 걸까.
발을 다쳐서 정을 나누었던 일 그만두고
어려워졌다, 담배나 술 심사가.
노래를 마치고 평상에서 마당에 내려서는 얼굴이,
자그마한 몸이
절름거리는 나를 재촉한다.
“경준아!” 목소리에
“형님! 여기 사세요?”
“일하러 가는 거야?”
“일자리 구하러 가요.”
말이 잠시 흩뿌려지고,
허약한 사람이 꼿꼿이 걸으며 대문을 나선다.
프로그래머 일에 실패한 걸까?
점심을 먹고 어디로 가는 걸까?
이슬비가 내리는데. 이슬비가 내리고 있어.
공간이 맑아 마음이 가라앉는 듯 침잠한다.
허약해도
공간이 샛맑아 낮은 집들 풍경이 아름답게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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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6 <원작>
=→ 2023.01.06. 16:29. 박석준 시집_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_내지(0106).pdf (부제 + 심사가./단어교체: 샛맑아) <원작 교정>
= 시집_『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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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18-12-06 (심사가 /희맑아)
발을 다쳐서
여기 돈 넣어둘게요.
유리컵 속으로 백원짜리 오백원짜리 동전 몇 십 개를 넣어
누워 있는 어머니께 드리고 창고 옆 좁은
빈 곳으로 간다.
슬퍼서
노래 부르는데, 동생이 애절한
마디를 따라서 부른다.
누나가 곰팡 난 무를 물로 씻어내자
일거리 없어 주방에서 내가 나왔지만
옆방 배불뚝이 남자와 부딪칠까 봐
방문 앞에서 시선이 돌아간다.
이사 왔다는 부부인지 마루 앞 평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다.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TV 소리와 버무려져
내용 알 길 없다.
남자 노랫소리가 간드러지게
구부려지면서 애절하다.
트롯 목소리가 구슬프구나. 맑지만
욕구충족이 안 된 걸까.
발을 다쳐서 정을 나누었던 일 그만두고
어려워졌다, 담배나 술 심사가
노래를 마치고 평상에서 마당에 내려서는 얼굴이,
자그마한 몸이
절름거리는 나를 재촉한다.
“경준아!” 목소리에
“형님! 여기 사세요?”
“일하러 가는 거야?”
“일자리 구하러 가요.”
말이 잠시 흩뿌려지고,
허약한 사람이 꼿꼿이 걸으며 대문을 나선다.
프로그래머 일에 실패한 걸까?
점심을 먹고 어디로 가는 걸까?
이슬비가 내리는데. 이슬비가 내리고 있어.
공간이 맑아 마음이 가라앉는 듯 침잠한다.
허약해도
공간이 희맑아 낮은 집들 풍경이 아름답게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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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초순 ∽ 2018.12.06. 13:36,메. 박석준-작품.hwp (심사가 /희맑아) <원작>
= 『광주전남 작가』 24호(2018.12.28.)
= (2019.07.17. 20:38.내메. 박석준-작품-0618-11.hwp) 날짜: 20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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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2017-07 초순. 꿈)
가상: 2006-04-00, 광주시 유동 슬픈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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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뒷모습을 보았을 뿐이지만 어떤 사람(프로그램 일을 하는 후배)의 뒷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꽤 흐흔 후에 유사한 상황을 만나자 이 기억이 재생되면서 판단을 불러냈다. 그리하여 재회했는데, 이 기억은 또 하나의 인상을 새기면서 ‘허약해도 공간이 희/샛맑아 낮은 집들 풍경이 아름답게 선명하다’라는 판단을 불러냈다.
이 글엔 동병상련(허약한데다가 일을 잃어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가정엔 화목을 가져다주면서 꼿꼿하게 사는 것)과, 동병(가난하고 욕구충족이 안 되어 삶이 애절함) 거부의 심정이 겹쳐 흘러간다.
섬세하게 보면 이 글엔 몇 가지 기법이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이슬비가 내리는데, 이슬비가 내리고 있어”는 특이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감흥에 젖어 하는 말 같으면서도 비애가 흐르는 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슬비 ∽ 아름답다”로 시각적 이미지를 흘려내고, ‘남자 ∽ 심사가’/‘프로그래머 ∽ 침잠한다’라는 상황서술로 ‘의식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또한 내가 애절한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한 후에 우연히 듣게 된 노래에서 ‘애절하다’고 판단하고 ‘욕구충족이 안 된 걸까’라고 추리해본다. 이 글은 바로 이러한 요소(‘애절함’과 ‘뜻밖에 만난 가난함’) 때문에 초현실주의 성격을 갖게 된다.
이 글은 “곰팡 난 무”, “침잠한다” 같은 비정상적 하강 이미지가 있으면서도 선명한 이미지로 아름다움을 발생시킨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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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와 창작 배경
퇴직하고 4개월이 다 되어가는 2017년 6월 23일에 푸른마을에서 사는 나는 남녀 두 시인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친해지려고 상무지구 술집에서 나와서 그들을 따라 산수동 쪽으로 걸었다. 나는 시력이 안 좋아서 밤길엔 특히 조심하는데 두 시인이 빠른 걸음으로 밤길에서 움직여서 코너로 돌았기에 급히 걸음을 재촉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발이 무엇엔가 부딪혀서 그대로 넘어졌고 정신이 아찔했다. 공사하고는 미처 다 철거하지 못한 것인지 잘리다 만 철근들이 인도에 박혀 있었는데 그 철근에 왼쪽 발이 찍힌 것이다. 너무 아파서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발등뼈가 깨져버렸다고 진단했다. 7월 하순엔 큰형 장례를 치르려고 깁스를 한 채로 서울에 가기도 했는데, 발등뼈는 다음해 봄이 되어서야 다 붙었다.
이 글은 2017년 7월 서울에 갔다 온 후에 꾼 꿈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유동에 살았으나 2009년 봄에 돌아가셨고, 경준이에게는 컴퓨터 일에 실패하고는 서울로 가겠다고 해서 내가 2004년에 돈을 약간 마련해줬을 뿐이다. 그런데 경준이와 헤어지고는 (지금까지) 얼굴 본 적 없는데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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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7-07-10_16:17. 푸른마을 내가 사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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