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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나의 무비즘 (68), 실존주의 멜랑콜리 (9), 아방가르드 (35), 사상시 (31), 이미지즘 (14)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 / 박석준

나의  81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

나의 무비즘 (68), 실존주의 멜랑콜리 (9), 아방가르드 (35), 사상시 (31), 이미지즘 (14)

2005-08-29  09-08

박석준 /

(원작 교정)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

 

 

  “미안해, 친구. 내가 무심하더라도, 연락 없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어.”

  밤늦게 술을 마신 듯한 목소리, 1년 만에나 듣는 목소리에 다음 주에 가겠다고 응하고서도 혹시 몸이 안 좋아진 걸까, 생각들이 나서, 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했지만 미룬다면 약속을 어길 수 있어서, 진주에 도착하자 택시를 타고, 숲 속에 몇 집 들어선 마을에서 집을 물어 찾았는데.

  아침에 진주 간다고 나가셨는데, 연락해 볼까요? 아뇨, 택시를 어디로 오라고 부르면 되죠?

  강한 바람을 몰고 후두둑 소리를 내며 거센 비가 쏟아진다. 열두 시가 안 된 오전 나무들 사이에서 나온 사람, 정원관리사라는 사람이 응접실에서 기다리라고 안내하는데.

  진주에? 무슨 일로 진주에? 생각이 돌연 생각도 않았던 여자 형상을 떠올려낸다, 장미! 진주에서 산다는 말 들었는데, 3년 전에.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숲 속 서정마을에 살았다는 여자, 장미. 밀려올 듯한 생각을 닫는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 희규. 예컨대 돈에 있어서, 혹은 선택에 있어서.

  태풍이 불고 비가 쏟아져, 경상도 산청 산골에서 택시를 불러 내려오는 길에 내 마음에 그을음이 남는 것을. 숲 속에 그가 산다는 집, 안벽 모퉁이의 벽시계 바로 아래 벽난로에 삶의 흔적으로 남은 그을음과는 다른 빛깔로.

  모든 흔적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사람, 사람 만나기가 인생에서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는, 화요일 진주 터미널로 돌아와서는 도시에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도시. 장미가 도시로 떠난 지도 6년이 되는데, 전화를 처음 받고 도시에서 장미를 만났지. 6년 전 11월 비 내리는 밤 전화박스 앞에서.

  “선생님 집에 있고 싶어요.”

  늦은 밤이라 데려갈 수밖에 없는 그녀, 처음 알게 된 게 그 며칠 전 나의 시 낭송회 직후였을 뿐인데, 술을 마시고 싶다며 냉장고에서 반 병 남은 소주를 찾아낸 스무 살 그녀. 무슨 사정이 있어 술을 마시는 걸까, 열여섯이나 더 먹은 남자의 집에 있고 싶다는 까닭을 물어보는 그런 때 희규가 옆방에서 나왔지. 몇 달 전에 이혼을 하고 고독 때문일까? 가끔 찾아왔는데 아파하는 때도 있었어. 한 달쯤 지나 장미가 밤에 다시 찾아온 날엔, 그보다 좀 늦은 시간에 찾아왔지.

 

  그런데 수요일인 오늘 밤 공터를 거닐다가 날이 청명하게 개어 있음을 알게 되어, 연관 속에서 갖게 된 예감에 핸드폰을 눌렀더니

  “어머, 선생님!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 저 결혼해요.

  2년이 넘게 단절되었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시를 읽으면 선생님이 생각나는 것은 이렇듯 제게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일까요? 선생님을 닮은 지적인 남자, 돈이 있어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남자가 프러포즈를 해 와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어디론가 가야 할 사람이기에 다시 한 번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

  라는 통화 이후로 편지도 만남도 목소리도 접할 수 없었는데.

  희규도 장미도 이제 먼 곳에 있다. 어떤 한 사람이 잊혀지는 데에 충분한 조건이라도 되는 듯이.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하면서 나는 오늘 도시의 밤길을 걷는다. 어두워진 도시, 굴레지어 돌아가는 내 그림자가 벽 앞에서 문득 멈추었음을 본 것처럼.

 

 

  * 김소월, 먼 후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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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8  2016.07.03. <원작>

 2016.11.09. 17:41. 박석준 시집 본문.pdf. <원작 교정(校訂): ( 후일)>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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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2006-07-03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

 

 

  “미안해, 친구. 내가 무심하더라도, 연락 없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어.”

밤늦게 술을 마신 듯한 목소리, 1년 만에나 듣는 목소리에 다음주에 가겠다고 응하고서도 혹시 몸이 안 좋아진 걸까, 생각들이 나서, 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했지만 미룬다면 약속을 어길 수 있어서, 진주에 도착하자 택시를 타고, 숲 속에 몇 집 들어선 마을에서 집을 물어 찾았는데.

  아침에 진주 간다고 나가셨는데, 연락해 볼까요? 아뇨, 택시를 어디로 오라고 부르면 되죠?

  강한 바람을 몰고 후두둑 소리를 내며 거센 비가 쏟아진다. 열두 시가 안 된 오전 나무들 사이에서 나온 사람, 정원관리사라는 사람이 응접실에서 기다리라고 안내하는데.

  진주에? 무슨 일로 진주에? 생각이 돌연 생각도 않았던 여자 형상을 떠올려낸다, 장미! 진주에서 산다는 말 들었는데, 3년 전에.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숲 속 서정마을에 살았다는 여자, 장미. 밀려올 듯한 생각을 닫는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 희규. 예컨대 돈에 있어서, 혹은 선택에 있어서.

  태풍이 불고 비가 쏟아져, 경상도 산청 산골에서 택시를 불러 내려오는 길에 내 마음에 그을음이 남는 것을. 숲 속에 그가 산다는 집, 안벽 모퉁이의 벽시계 바로 아래 벽난로에 삶의 흔적으로 남은 그을음과는 다른 빛깔로.

  모든 흔적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사람, 사람 만나기가 인생에서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는, 화요일 진주 터미널로 돌아와서는 도시에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도시. 장미가 도시로 떠난 지도 6년이 되는데, 전화를 처음 받고 도시에서 장미를 만났지. 6년 전 11월 비 내리는 밤 전화박스 앞에서.

  “선생님 집에 있고 싶어요.”

  늦은 밤이라 데려갈 수밖에 없는 그녀, 처음 알게 된 게 그 며칠 전 나의 시 낭송회 직후였을 뿐인데, 술을 마시고 싶다며 냉장고에서 반 병 남은 소주를 찾아낸 스무 살 그녀. 무슨 사정이 있어 술을 마시는 걸까, 열여섯이나 더 먹은 남자의 집에 있고 싶다는 까닭을 물어보는 그런 때 희규가 옆방에서 나왔지. 몇 달 전에 이혼을 하고 고독 때문일까? 가끔 찾아왔는데 아파하는 때도 있었어. 한 달쯤 지나 장미가 밤에 다시 찾아온 날엔, 그보다 좀 늦은 시간에 찾아왔지.

 

  그런데 수요일인 오늘 밤 공터를 거닐다가 날이 청명하게 개어 있음을 알게 되어, 연관 속에서 갖게 된 예감에 핸드폰을 눌렀더니

  “어머, 선생님!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 저 결혼해요.”

  2년이 넘게 단절되었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시를 읽으면 선생님이 생각나는 것은 이렇듯 제게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일까요? 선생님을 닮은 지적인 남자, 돈이 있어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남자가 프러포즈를 해 와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어디론가 가야 할 사람이기에 다시 한 번 연락해주기를 바란다.

  라는 통화 이후로 편지도 만남도 목소리도 접할 수 없었는데.

  희규도 장미도 이제 먼 곳에 있다. 어떤 한 사람이 잊혀지는 데에 충분한 조건이라도 되는 듯이.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하면서 나는 오늘 도시의 밤길을 걷는다. 어두워진 도시, 굴레지어 돌아가는 내 그림자가 벽 앞에서 문득 멈추었음을 본 것처럼.

 

 

* 김소월, 먼 후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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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8  2016.07.03. (제목 오식:  훗날) <원작>

= 2016.07.04. 10:42. 2시집_차례-2016-2.hwp (원작 원고)>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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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상황

    2005-08-29  09-08 (09-06. ) 또는

    2005-09-19(, 태풍. 진주), 2005-09-21(.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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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관적 해석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가 기억에 남아 문득 장면들로 뇌리에 재생되는 큰 까닭은 네 인물이 움직여서 시공간을 흘려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 개의 전화 목소리(,,)와 두 개의 말소리(,), 세 곳의 비가 매우 선명하게 삶의 이미지를 만들어 시간의 색깔을 흘려내는 점도 그 원인으로 분석된다.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정확한 일상어의 사용, 습관화된 표현의 거부, 새로운 리듬의 창조, 주제의 자유로운 선택 등을 반영한 이미지즘의 글이다.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미안해, 친구. 내가 무심하더라도, 연락 없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어.”, 아침에 진주 간다고 나가셨는데, 연락해 볼까요?”, 아뇨, 택시를 어디로 오라고 부르면 되죠?”, 선생님 집에 있고 싶어요.”, 어머, 선생님!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 저 결혼해요.7개의 정확한 일상어를 사용한 목소리가 흘러가서 새로운 리듬과 서사적 구성의 골격을 만들어낸다.

  “희규의 전화 목소리를 듣고 경상도 산청 숲 속으로 찾아갔으나 희규의 정원관리사한테서 진주 간다고 나가셨는데라는 말을 듣고 만남을 포기한다. 친구가 산다는 숲 속의 집까지 와놓고 는 왜 만남을 포기한 것일까? 바람이 더 강해진 것일까? (“희규가 진주로 갔다고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아침에 진주 간다고 나가셨는데, 연락해 볼까요?”라고 건넨 정원사의 말이 속으로 진주를 밀어넣어 다른 인물인 장미를 연상시킨 중요한 장치가 되어버렸고, 복선(伏線)이 되어버렸다.) 얼핏 사랑의 좌절이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픔이 생각나게 하고 김소월의 시 먼 후일의 싯구로 마무리함으로써 이런 생각을 강화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이 남기려는 정서는 실존주의멜랑콜리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그러나 섬세하게 살펴보면, 산청에서 내려오는 길에 는 마음에 그을음이 남았다. “희규가 산다는 집, 안벽 모퉁이의 벽시계 바로 아래 벽난로에 삶의 흔적으로 남은 그을음과는 다른 빛깔로. 그을음에서 모든 흔적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사람, 사람 만나기가 인생에서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사람은 다른 사람 없이 실존하기가 어렵다라는 메시지와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라는 메시지(시인의 철학)를 흘려낸 말로도 해석된다. 즉 이 글이 인간의 실존을 다룬 사상시가 되게 한다. 한편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인생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미스터리.’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 글은 이처럼 주제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요소를 담고 있다.(매우 자유로운 주제를 선택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나 사건,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의문점이 해결되지 않은 사건, 미스터리(Mystery)를 남긴다. 그리고 이 미스터리가 이 글에 아방가르드 경향을 낳는다.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해 이 작품은 연상을 유도하는 추리소설 기법을 사용하고, 매우 사실적인 서사와 섬세한 묘사를 동반했다. 이미지를 선명하게 흘려내려는 이런 장치들을 통해 시인은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네 사람의 삶(실존)의 장면을 형상화했다.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 시공간이 흘러가면서 영화의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무비즘의 글이다. 산골 숲 속의 비를 보았던 는 진주 터미널로 돌아와서는 도시에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비 내리는 밤 전화를 처음 받고 도시의 전화박스 앞에서 장미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주에서 돌아온 후에 장미의 전화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는 이렇게 인물을 따라 시공간이 흐르는 무비즘 기법을 보여준다. 특이한 것은 와 관계가 깊은 희규장미이야기를 전화를 소재로 전하고 있다는 점이며, “희규를 만나러 간 이후 돌아온 오늘까지 정원관리사하고만 실제로 만났고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는 점이다. 한 인물이 지향한 일이 다른 인물에게 실현된 것임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은 이것뿐이어서 이 글은 미스터리를 남긴다.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는 정원관리사가 한 아침에 진주 간다고 나가셨는데란 말이 의 시간을 미궁으로 몰고 간 것으로 끝난다.(그리하여 4인이 펼쳐낸 사건이 미스터리가 되고 만다. 추리소설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한편 글을 시작하는 말이면서 희규의 말인 미안해, 친구, “희규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희규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한 복선이 되어버렸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정원관리사의 말숲 속의 비상징하는 말임을, 정원관리사의 말숲 속의 비였음을 깨닫게 한다. 이런 점들이 이 글에 아방가르드 경향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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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노트

  나(박석준)2005학년도 순천여고 교지 담당교사여서 교지편집부 학생들과 함께 산청간디학교를 취재하러 갔다. (2005-08-29 09-08)의 한 날이라고 기억되는데, 이날은 비가 내리고 있고 태풍이 온다는 소식도 들었으나 학교 일정상 간디학교가 소재한 경남 산청으로 가야만 했다.

  대안학교인 이 학교는 경치가 매우 좋았고, 교무실인가 쌤실인가 하는 명칭이 붙은 곳에서 보게 된 벽난로와 거기에 붙은 그을음, 그리고 벽시계가 인상 깊었다. 그러나 교장을 만나지 못한 채 그 이름이 나의 선친과 같다는 것만 알고 발길을 돌렸다. 그 후 비 내리는 진주의 풍경을 터미널에서 인상 깊게 새기고 귀교했다.

  「전화 목소리 - 숲 속의 비는 내가 산청과 진주에 있던 2005년 그날의 날씨라든가 시간을 배경으로 한 글이다, 하지만 인물과 사건과 장소는 창작한 것이다. ‘친구의 이름은 나의 선친의 이름으로 정했다. 나는 2008년에 시인으로 등단했고, 이 글을 쓰게 된 날은 201662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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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16-06-28

숲 속의 비  목소리

 

 

  “미안해, 친구. 내가 무심하더라도, 연락 없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어.”

  밤늦게 술을 마신 듯한 목소리, 1년 만에나 듣는 그의 목소리에 다음주에 가겠다고 응하고서도, 혹시 몸이 안 좋아진 걸까, 생각들이 나서 인간의 굴레는 모양만 변형한 채 밤마다 나의 근본을 하나씩 깨뜨리곤 했다.

  이미 바람은 강해지기 시작했고 미룬다면 약속을 어길 수 있어서 진주에 도착하자 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 숲 속에 몇 집 들어선 마을. 열두 시가 안 된 오전인데 아침에 진주로 갔다고 관리인이 말한다. 더 묻지 않았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에 너무나 여러 가닥으로 불안과 불확실한 것들이 흘러갔기에, 그저 우연 혹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숲 속 마을. 떨어지는 비에 떠오른 형상.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숲 속 서정마을에 살았다는 여자, 장미. 진주에서 산다는 말 3년 전에 들었는데, 아직 살고 있을까? 희규가, 여기에 온 지 2년 됐다 하는데, 나에게는 상징으로만 존재한다. 꿈꾸었던 나와 엇갈리게 다가와 흔적만 남긴 나의 지나간 것들과는, 그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갔기 때문에예컨대 돈에 있어서, 혹은 선택에 있어서.

 

  그 화요일은 모르는 곳으로 내가 여행을 다시 떠난 날이었지만, 태풍이 불고 비가 쏟아져, 경상도 산청 산골에서 택시를 불러 내려오는 길에 내 마음에 그을음이 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숲 속에 그가 산다는 집, 안벽 모퉁이의 벽시계 바로 아래 벽난로에 삶의 흔적으로 남은 그을음과는 다른 빛깔로.

  모든 흔적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사람, 사람 만나기가 인생에서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는, 도대체 이런 나는 어디서 왔는가? 과거에서 온 것만 같다, 라고 단상들이 일어난다. 그러고는 진주 터미널로 돌아와서는 도시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도시. 장미가 도시로 떠난 지도 6년이 되는데, 내가 장미로부터 전화를 처음 받고 만난 곳도 도시였다. 6년 전 11월 비 내리는 밤 전화박스 앞에서.

  “선생님 집에 있고 싶어요.”

  늦은 밤이라 데려갈 수밖에 없는 그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게 그 며칠 전 나의 시 낭송 직후였을 뿐, 냉장고에서 소주 반 병 남은 걸 찾아내어 술을 마시는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을까, 물어보는 그런 때 희규가 옆방에서 나왔다. 희규는 이혼을 하고 고독 때문인지 가끔 찾아왔고 아파하는 때도 있었다. 한 달쯤 지나 장미가 밤에 다시 찾아온 날엔, 희규가 그보다 좀 늦은 시간에 찾아왔다.

 

  그런데 수요일인 오늘 밤 공터를 거닐다가 날이 청명하게 개어 있음을 알게 되어, 연관 속에서 갖게 된 예감에 핸드폰을 눌렀더니

  “어머, 선생님!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 저 결혼해요.”

  2년이 넘게 단절되었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시를 읽으면 선생님이 생각나는 것은 이렇듯 제게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일까요? 선생님을 닮은 지적인 남자, 돈이 있어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남자가 프로포즈를 해와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어디론가 가야 할 사람이기에 다시 한 번 연락해주기를 바란다

  라는 통화 이후로 편지도 만남도 목소리도 접할 수 없었는데.

  희규도 장미도 이제 먼 곳에 있다. 어떤 한 사람이 잊혀지는 데에 충분한 조건이라도 되는 듯이.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하면서 나는 오늘 도시의 밤길을 걷는다. 어두워진 도시, 굴레지어 돌아가는 내 그림자가 벽 앞에서 문득 멈추었음을 본 것처럼.

 

 

* 김소월 먼 후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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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8 오전 12:36. 2시집_차례-2016-0,hwp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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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남 산청-비 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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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_산청 별아띠천문대_work-2016040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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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_진주_비 내리는 날_KakaoTalk_20200228_150418542_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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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_ 진주버스터미널 _ 비오는 날 _art_146527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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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유동 공터. 2023-07-23&nbsp;오후&nbsp;6:27_DSC5467

  광주시 유동 공터. 2023-07-23 오후 6:27_DSC5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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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유동 공터. 2023-07-23 오후 6:32_DSC5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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