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2 신
나의 무비즘 (2), 실존주의 앙가주망 (1)
1967
박석준 /
신
이토록 서둘러 어디로 가는 걸까?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
지하철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신 주인, 몰려든 사람들
신이!
도랑물 따라 흘러가는 신을 잡을 수 없어
불안해하고 안타까워하며 보았는데.
장마철 고무신을 가지고 도랑에서 신나게 놀다가
대학 시절 마루에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 한 켤레
우리 엄마 못 봤어요?
검은 세단차가 낮에 집 앞에 대더니 실어가던데……?
뭔 일 있냐고 만화가게 아저씨가 물어보고
중정부에 끌려간 엄마 찾으러 서울로 동생이랑 올라가고.
살다가 다리가 오그라들었어도 신을 신고
쉬엄쉬엄 걷던 어머니가 겨울에 뇌출혈로 쓰러져 가고
털신만 남아
이사 온 아파트 베란다에 아직 놓여 있는데.
신이!
없어졌네. 동생도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도 사라져서 불신을 하고
불안해도 맨발로 눈길을, 공사 중인 길을 걸어간다.
가다가 버려진 구두 한 짝, 슬리퍼 한 짝 생기어
신고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가다가
꿈에서 깨었는데
신이 없네.
신이 보이지 않는다.
신경이 쓰이고 생각도 하고 살펴보고,
신을 찾았어도 며칠 전에도 꾼 신
어머니 사후로 간혹 꾸는 신
잃어버린 꿈 생각도 나서
뭔가 불안하게 하는 것 같아
신을 신고 식당에서 나와 밤길 나서면서 조심스러워진다.
어디로 갔지?
먼저 나간 사람 불신을 한다.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어야만 하는 듯이
「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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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6 ∽ 2016-08-24 오후 8:02 <원작>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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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2016-06-26. 뉴스 (1연, 현재 시점).
1967-장마철. 계림국민학교 4학년 (2연)
1979-10-20. 중정부에 끌려감, 대학교 1학년 (3연)
2007-12. 쓰러짐 / 2009-04. 사망 (4연)
2016-06-26. (꿈, 5연)
2016-07-01(금). (6⁓7연. 현재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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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구성형식/시점
이 글은 2연→3연→4연→5연→1연→6연→7연 순으로 발생한 사건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 글이 “이토록 서둘러 어디로 가는 걸까?”로 시작하는 1연에, 그리고 “신이 없네.”, “어디로 갔지?”로 이어지는 6, 7연에 현재 시점의 상황과 생각을 표현하고, 그 사이(2⁓5연)에 과거 일이 전개되는 형식을 취해 7연으로 구성한 것임을 먼저 알게 된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 2⁓5연이 1연에 이어진 현재의 상념임을 깨닫게 된다. 이 글은 이중의 현재 시점을 사용하여 시공간을 이동하는 형식으로 구성하고 이 이동을 통해 ‘신’과 ‘가다’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무비즘 수법을 사용한 글이다. 1연을 6연 앞에 배치하지 않은 이유는 메시지를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2. 표현/의도
이 글은 “신”, “신발”, “고무신”, “털신”, “신경”, “불신” 등 동일음이 포함된 어휘를 각 연에 배치하고 있어서 뉘앙스를 풍긴다.
1연은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와 “지하철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신 주인, 몰려든 사람들”이 “이토록 서둘러 어디로 가는 걸까?”를 도치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의문을 제기하여 호기심을 끌어들인 후 뜻밖에 ‘개’를 등장시켜 괴리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지하철역 안으로 몰려든 사람들 틈에 신발 신은 개가 왜 있을까? “어디로 가”려면 현대의 도시 사람이 “신”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데, 현대 도시의 개가 어디로 가려면 신발이 반드시 필요할까? 그리고 개가 어디로 가려고 무엇을 하려고 지하철역에 나온 것일까?
개가 무엇을 하기 위해 신을 신고 지하철역에 오는 일은 상식 있는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장에 지하철역에 있는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를 사람들보다도 앞에 배치한 것은 “저 개”를 끄집어들여 “저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을 ‘비꼬아서 표현하기(사르카즘, sarcasm)’ 위해서이다.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는 “저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을 대신한 사물의 형상이다.
3. 내용/메시지
지하철역에서 뜻밖에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를 보게 되어 “어디로 가는 걸까?”를 생각하게 된 화자는, 곧바로 어린 시절 “흘러가는 신(고무신)”이 떠올라서 “흘러가는 신을 잡을 수 없어/불안해하고 안타까워하며 보았”던 시간을 새겨낸다. 이것은 화자에겐 ‘신’과 ‘가는’이 묶인 이미지로 저장되었음을 암시한다.
‘강아지신발 신고 지하철역에 있는 “저 개”의 모습’은 ‘흘러가는 신을 잡을 수 없어 불안해하고 안타까워하며 보는(신을 신지 못한) 소년의 모습’, ‘고무신을 신지 못한 채 중정부에 끌려가는 엄마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동물인 개는 신발을 신고 있고 사람은 신발을 못 신었다는 점에서 괴리감을 준다.
‘강아지 신발을 신겨 개를 지하철역에 데리고 온 것’은 ‘애완인가, 인정(人情. 남을 동정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을 잃어감인가, 개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認定)받고 싶어하는 마음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자유 의미와 ‘인간적인 삶’ 묻고 있다.” 이것이 이 글에서 전하려는 중심 메시지이다.
‘신’은 (주로) 사람이 땅을 딛고 서거나 걸을 때 발에 신는 물건이며 사람이 만든 것이다. ‘신’은 ‘사람이 걷는(가는, 살아가는)’을 연상하게 한다. ‘사람의 죽음 후엔 자신의 신만 남기 때문이다.
7연에선 자리를 함께한 사람이 자신의 목적(식사하기 일)을 달성한 후에는, 자기 신을 찾지 못하여 불안해하면서 살펴보는 사람을 놔두고, 바로 말없이 먼저 가버린 사실을 알게 된 화자가 가버린 그 사람을 불신한다. 현대 도시인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타인에 대한 냉정한 점’을 암시한다. 현대 자본주의 도시사회(도시인들)의 인간관계를 드러내어 비정함을 느끼게 한다.
화자의 불안은 ‘신만 남기고 어머니가 사망한 것’, 더 근원적으로는 ‘신만 남기고 어머니가 중정부에 끌려간 것’, ‘흘러가는 신을 잡을 수 없었던 일’ ― ‘신 주인(사람)이 신을 신을 수 없는 처지에 놓임’과 관련된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저 개”는 신을 신고 있다. 아이러니컬하다.
이 글은 지하철역에 있는 “강아지신발 신은 저 개”가 중심 이미지를 형성하여, 현대 자본주의 도시 사람의 살아가는 다양한 양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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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밖 실화
나는 1982년 1월에 이사하기 전까지는 계림동에서 살았다.
우리 안집은 삼거리의 양쪽 길을 낀 두 번째 집이었다. 삼거리의 오른쪽 길인 소로를 조금 따라가면 만홧가게, 이발관이 안집 대문 맞은편에 있는데, 대문 쪽으로 흘러가고 대문 앞에서 복개된 좁은 도랑에서 나는 10살 때(1967년 장마철에) 고무신을 가지고 놀았다.
1979년 4월에 형사들이 안집으로 들이닥쳐 수색했다. 서울과 광주에서 온 이 형사들은 집을 감시했다. 큰형과 삼형이 남민전 조직에 관련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어머니 신으라고 한봉 형이 1979년 10월 20일 아침에 놓고 간 흰 고무신이 내가 대학교에서 돌아온 오후에도 안채의 공부방 옆 마루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형들의 종적을 알 수 없어서 중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어머니를 끌고 갔기 때문이었다.
1971년(내가 중2 때)의 파산으로 인한 빚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1982년 1월에 집을 잃고 중흥동 ‘장원여관’으로 이사했다.
큰형은 1978년 12월에 대학교에 진학하라며 나에게 언덕 밑 포장마차에서 20만 원을 주었다.
그리고 1979년 4월에 형사들이 우리집에 들이닥쳤다. 형들이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 (7) 「장미 곁의 두 얼굴」)
아침에 한봉* 형이 사다 준 흰 고무신만 마루에 있고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6일 후 막내랑 서울로 갔다.
10시경, 어머니, 작은형이 아버지 사는 방에 돌아왔다.
전기가 흐른가 몇 번 정신 잃었제라. 그런디 뭔 꿍꿍이가
있는가 8시 반이나 돼서 가라고 내보냅디다.
나는 트랜지스터로 음악을 들으며 새벽으로 갔다. 그냥
음악이 끊기면서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뉴스가 삽입됐다.
광주로 돌아온 날, 4월부터 나를 감시하고 시험도 방해한
형사가, 광주와 서울 각 다섯 명인 형사가 보이지 않았다.
11월엔 해방전선*, 큰형, 삼형, 검거 기사를 보았다.
― 박석준, 「1980년」 부분
작은형과 1979년 10월 20일에 끌려간 어머니가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을 받고 1주일째 갇혀 있다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 풀려났다.
1979년 11월 3일엔 남민전 사건으로 큰형, 삼형, 검거됐다.
1989년 8월에 해직된 나는 아파서 1년 6개월을 일을 못 한 채 살아가는데 1994년 3월 2일자 복직 발령을 받아서 돈을 빌려 구두를 사 신고 소안도 섬으로 갔다. 그런데 2007년 12월 크리스마스 밤에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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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옛 우리집이 있던 곳(안양이발관 맞은편 집터)_2023-01-15
1967년 당시 집 담 가에 작은 도랑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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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국민학교 주변_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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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 김근태 고문 사건을 다룬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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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탄 신발 신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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