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 언덕의 아이
나의 무비즘 (1), 실존주의 모더니즘 (1), 아방가르드 (1)
1966
박석준 /
언덕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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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에는 「언덕의 아이」와 「언덕의 말」이 있다. ‘언덕’이라는 장소는 이외에 ‘남민전 사건’을 다루는 글 등 몇 편의 글들에서도 나오는데, 첫사랑과의 헤어짐, 친구와의 헤어짐 후에 ‘나는 고독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가게 된 때문인지는 모르나, 나에겐 ‘언덕’이라는 장소 혹은 말이 중요한 의미로 남았다.
나는 첫 친구를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하기 1년 전(1963년)에 사귀었다. ‘맥아더’를 좋아한 명현이라는 이 친구는 우리 집의 길갓방에서 셋방살이하는 가정의 아이였는데, 나에게 (종이를 말아서 불붙여 피우는) 담배 피우기를 가르쳐주었고, 입학 직전에 소리 없이 이사했다. 이것은 내가 겪은 첫 번째 이별이었다.
그리고 입학하여 국주, 길수, 김정호하고는 같은 반으로 학교를 다녔고 다른 학교에 다니는 우리 집 앞 골목에서 사는 상록이하고도 친구로 지냈다.
한데 내가 가장 친해지고 싶은 아이는 짝 장재선이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아이인데, 1학년 종업식하는 운동장에서 내 옆에 서 있다가 엄마 손에 잡히어 사라져갔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이별이다. 이날 운동장에서 들었던 노래를 잊지 못하다가 20살 넘어서 우연히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제목이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거의 날마다 찾아온 정호는 맹호부대 이야기를 해주거나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3학년 된 얼마 후 상록이네가 이사해서 나는 부모 모르게 결석을 하곤 했다.
마음 둘 곳 없는 나를 4월경에 여자아이가 찾아왔다. 동갑인 혜자라는 아이인데 명현이가 살던 집에 이사 온 그날부터 대문 옆 나의 방에 놀러왔다.
며칠 안 되어 우리 둘은 살림을 차렸다. 밥도 해먹고 함께 놀러도 가고.
노는 데 재미를 붙인 나는 결석하거나 학교에서 점심시간 전에 몰래 나왔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담임(여선생)이 우리 식료품가게로 찾아와 엄마한테 이실직고하는 바람에 엄마는 설탕이랑 밀가루 한 포대랑 선물로 드렸고, 아버지는 나를 혜자한테 떼어놓으려 했다. 너는 왜 몸은 안 크고 공부도 안 하고 아버지 속만 썩이냐, 손님 오니까 큰방 청소해놔라를 날마다 반복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얘가 아주 이양스러우니까(아양스러우니까) 같이 놀지 마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학교가 재미없어서(그리고 교실에 갇혀 있는 게 무척 싫어서) 결석을 하거나 조퇴를 하고는, 혼자 백과사전 보고 놀거나 공원에 가거나 언덕에 가거나 하는 식으로 나날을 보냈다.
내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 데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의 괴로움*이 있었다.
마침내 나는 4학년 여름에 담임한테서 징계(학교에 나오지 마라: 퇴학)를 받았는데, 가을에 온 새 담임에게 엄마가 사정사정해서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었다. 나의 결석은 5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내 몸에 심각하게 이상이 생겼음을 느끼게 된 무렵(학교 졸업하기 얼마 전)에 가장 친한 정호에게 헤어지자고 말하여, 내가 행한 첫 이별이 이루어졌다.
*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의 괴로움 → (3) 「국밥집 가서 밥 한 숟가락 얻어 와라」 / (4) 「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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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언덕의 아이
열두 그루였는지는 모르나 나무가 서 있는 언덕에서
내가 본 건 도시의 오후였지.
흐릿하고 몽롱하게 안개와 함께 박혀버린 어느 봄날,
열 살이나 혹은 아홉 살인 나는
그날도 그곳으로 찾아갔었지.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영원한 우정’과도 헤어진 날,
그 헤어짐 때문만은 아니었어.
아버지가 날 싫어한 것 같아
아마 이런 생각이 충동된 것도 같아.
곧 스물두 살이 될 나는 겨울에도
서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친구하고 떨어져 언덕이 있던 자리를 보았지.
제법 뚜렷하게 드러난 풍경 속에는
언덕이 단절되고 그 자리에 집들이
울긋불긋 오밀조밀 박혀 있더군.
눈 덮인 통나무집 앞에서 키스하는 사진 속에
‘거울 속 왕자님을 바라보는 거지 소녀가’*라고 예쁘게 쓰인
한 달 전의 카드가 생각나더군.
그런 뒤, 30년쯤 흐르는 사이에 우쩍 커져버린 도시를
도시의 아스라한 끝을 보았던 것인데…….
지금은 언덕에 세워진 병원 창밖을 내다보고 있지,
한 사람을 태운 휠체어를 밀고 4층 호스피스 병실
작은 나무 둘레를 왔다 갔다 하다가.
창밖에는 무슨 나무인지 나무가 자라고 있고
한두 달 후면 봄이 올 텐데, 오후가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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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의 아이」 전문
2010-10 ⁓ 2012-02-03 ⁓ 2012.04.30. 23:30 (완) =
『문학마당』 39호(2012-06-30)
2013-01-06 (교정)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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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속 왕자님을 바라보는 거지 소녀가’ : 1978.11.07.일(예비고사 날)에 받은 카드의 내용 → (7)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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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 2009-02. 현재 시점
(1966년 3학년 /1978년 12월 고3. 회상)
2009-02. 광주기독교병원,
어머니 임종 2개월 전
※ 「언덕의 아이」는 나의 가장 어린 시절(9살 때, 1966년)의 모습이 투영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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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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