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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116), 실존주의 모더니즘 (58), 의식의 흐름 (19) 불만의 겨울 / 박석준

나의 신시 129 불만의 겨울

나의 무비즘 (116), 실존주의 모더니즘 (58), 의식의 흐름 (19)

2012-02

박석준 /

불만의 겨울

 

 

  바람도 좀 불면서

  모호한 것들 사이에서

  나도 꼼지락거리며 살아가는 겨울

  아파트 경비원인 나는

  예전에 아버지가 주인이었고 젊은 내가 점원이었던

  식료품가게, 그 점포가 없어지고 슈퍼마켓 체인점이 들어선 건물,

  앞길에 쌓인 눈을 이른 아침에 쓴다.

  차들이 굴러가고 사람들이 지나간다.

 

  나는 가게 앞에 칸나를 키우던 아버지는 아니지만,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하여’ 돈 탈 때마다 멈칫거리는 아이들을 보다가

  나는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그 사람은 아버지 같아, 나는 깊은 정을 둘 수가 없었다. 이 아이들도 아버지에게 정을 두기가 어려울까?’

  그런 망설임을 할까? 저 애들도?

 

  아버지는 어떻게 면도를 했을까?

  해질 무렵에 잠시 집에 들어온 나는

  세면대 위 거울 속 희끗희끗한 구레나룻과 마주선다.

  (면도날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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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3 ∽ 2012.04.30. 23:30.메. 1문학마당에 보내는 신작시 5편.hwp (마주선 /무섭 ) <원작>

= 『문학마당』 39호/2012 여름호(2012.06.30.)

=→ (문장부호 첨가: 마주선다./무섭다.) 시집_ 『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12.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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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가상: 2012-02. 광주시 푸른마을 아파트단지 진입로 슈퍼 앞, 집

    기상청 날씨누리

        2월 1-4 / 7-9 / 16-19 광주시 소낙눈

https://www.weather.go.kr/w/obs-climate/land/past-obs/obs-by-day.do?stn=156&yy=2012&mm=2&obs=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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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4월 1일자 보내주신 시 「불만의 겨울」. 제목은 미국의 사회주의적 소설가 스타인백과 같아서 (「에덴의 동쪽」이라는 소설, 그리고 캘리포니아지역 계절노동자 얘기 「분노의 포도」 등으로 유명한 스타인백의 노벨상 수상 소설을 우리나라에 소개할 때 이런 제목이었지요. The Winter of Our Discontent. 제목만 같지 내용은 전혀 다른 소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돈 때문에 인간이 악해져 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지요. 현재 이 땅의 민중들, 불과 얼마 전 6.25이전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경험하며 살던 그 착한(?) 시골 사람들이 1970년 이후 도시로 나와 더러 돈을 모아 잘 된 사람들 거드름 피우며 사는 그 놀부 닮은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역겨워요. 돈이(Mammon: 악덕의 富神부신) 사람을 타락시키고 악하게 만들지요.

  선생님의 서정시 불만의 겨울」 자아성찰의 시. 자화상적 시입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중년의 사내) 잠자리에서 일어나 출근하려고 면도하려다 응시하게 된 너무도 꺼칠한 고르지 않게 뾰족뾰족 돋아나 있는 수염을 안전면도(?) 밀려다 (내력이 좀 복잡하고 약간 몰락한 가계) 거기 불만의 겨울을 나고 있는 사내(자기 자신)에 대한 자의식적 반응을 시제로 포착, 나에 대하여 애와 증(미움과 연민)을 내용으로 표현했다. 아버지(식품가게 주인)의 가게 자리에 지금은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 아파트 경비원인 나는 앞길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다. 대강 이런 story를 지닌 일종의 서술시인데 시적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드는 시입니다. 감히 이 시를 평하는(감상하는) 무례는 박석준 선생께서 제게 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이이들을 배치하여 유년기의 고뇌, 아버지에 대한 마음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 있는 감정의 얼룩, 위험한 면돗날이 빗나가 피를 볼 위험이 있는 그 면도장면 등 자살 충돌 같은 미묘한 뉘앙스가 우울증 초기의 자의식이 특이한 겨울의 정서와… 그래서 불만의 겨울이 제게 와서 공명을 일으킵니다. 저의 拙詩(졸시) 「자판기」, 「」도 지산동 변두리 우거에 살면서 겪는 고독과 인생유전의 일과 정년 후의 쓸쓸한 자화상적 소품입니다.

  민주국민의 긍지란 게 자판기에서 3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것, 로또복권의 행운도 타고나지 못해서 기껏해야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헌책 사이에서 풀벌레처럼 늙어가는 내 모습은 거울 속에 비친 면돗날에 잘리워 나가는 그 수염처럼 초라하고 쓸쓸해 보입니다. 우린 지금 이 땅의 시인으로서 소외계층들의 그 초라한 인생을 노래하고 있는 셈입니다. 무릇 모든 시는 독자와 시인 사이의 상상력의 교류입니다. 시는 감동이다. 이 감동이 없을 때 그 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시를 잘못 이해했더라도 용서하시고 시간 나면 들여다보시고 육필 없이 컴퓨터 글씨로 보내주십시오.

-2015.08.14. 19:45. 카페 가난한 비_2013-04-04. 자판기. 문병란

 https://cafe.daum.net/poorrain/FB7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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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나의 해설

  내(박석준)가 쓴 「불만의 겨울」은 “나”의 행위를 3개의 서술어로 종결한 서술시이다. (나는∽쓴다./나는∽생각해 본다./잠시 집에 들어온 나는∽마주선다.), 그리고 “”나의 이 행위들을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비즘 기법을 사용한 글이다.

  이 글은 “면도날아 무섭다.”로 끝난다. 이 표현과 이러한 구성을 본 문병란 시인은 “위험한 면돗날이 빗나가 피를 볼 위험이 있는 그 면도장면 등 자살 충돌 같은 미묘한 뉘앙스가 우울증 초기의 자의식이 특이한 겨울의 정서와… 그래서 불만의 겨울이 제게 와서 공명을 일으킵니다.”라고 생각과 마음을 편지로 전했다. 나는 이 글을 쓴 사람이지만, ‘면돗날이 빗나가 피를 볼 위험이 있다.’라는 생각을 이 글을 쓰기 전에도 간혹 했다.

  그런데 이 글의 “나”는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돈” 생각을 하는 가난한 소시민이다. 이 소시민은 “돈”과 ‘돈에 마음을 쓰는 도시의 아이들’, ‘도시를 굴러가는 차들’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존 스타인벡 소설 「불만의 겨울」의 주인공인 이선 홀리처럼 ‘자유의지 실존적 공허’를 느낀다. 이런 “나”를 통해 나는 자본주의 이념에 대한 나(박석준)의 비판적 견해(‘자본주의 도시에서는 돈이 가난한 사람의 살아감을 구속하면서 발전한다.’)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나=박석준’의 자화상적 시이다. 이 글은 소외계층들의 그 초라한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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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밖 실화

  이 글은 55살 때(2012년 4월)에 완성했으나 첫 시집 출판의 과정에서 제목처럼 수난을 받아서 두 번째 시집에 실렸다. “나”는 ‘나=박석준’의 자화상적 모습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아파트 경비원으로 바꿨을 뿐이다. 글 속 “이 아이들/저 애들”은 누나, 동생의 아이들이다. 나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교사로 근무한 26살 때부터 가족의 생활(특히 아이들의 학업)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줬다.

  출판 과정에서 수난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평가를 받으면 괴로울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문병란 시인께 보내는 편지에 삽입한 글인데 시인께서는 호평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 쓴 글 한 편을 놓고, 시인에 따라 ‘그것은 시이다, 그것은 시가 아니다’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글은 서술시인데(나는쓴다./나는생각해 본다./나는마주선다.), “아버지”는 나(박석준)의 어린 시절에 식료품 가게 주인인 박석준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것이다, 아버지는 정원에 칸나를 심고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버지가 빌려준 돈을 다 잃어서 가난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1976년 여름엔 칸나가 시들어버리고 나의 한 눈도 시들어버렸다. (→ 실화시인 「생의 프리즈 ― 절규」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내가 존 스타인벡의 「불만의 겨울」을 읽은 때는 19살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실현하려는 행동을 시도한 타인 때문에, 정직한 소시민인 아버지(식품 가게 주인 이선 홀리)가 박석준의 아버지처럼 돈을 다 잃는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나에게 자본주의 사회에 관한 많은 생각을 남겨서 나는 동명의 글을 시 형식으로 쓰게 되었다.

  문병란 시인은 이 글에서 나의 “유년기의 고뇌, 아버지에 대한 마음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 있는 감정의 얼룩”을 발견했다. 나의 첫 시집에 이런 면을 담은 글이 있다. (→ 나의 무비즘 첫 번째 글이며 실화인 「언덕의 아이」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나무가 서 있는 언덕에서

    내가 본 건 도시의 오후였지.

    흐릿하고 몽롱하게 안개와 함께 박혀버린 어느 봄날,

    열 살이나 혹은 아홉 살인 나는

    그날도 그곳으로 찾아갔었지.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영원한 우정’과도 헤어진 날,

    그 헤어짐 때문만은 아니었어.

    아버지가 날 싫어한 것 같아

    아마 이런 생각이 충동된 것도 같아.

― 「언덕의 아이」 부분

 

  이 글은 “면도날아 무섭다”로 끝나는데 이 표현을 본 문병란 시인은 “위험한 면돗날이 빗나가 피를 볼 위험이 있는 그 면도장면 등 자살 충돌 같은 미묘한 뉘앙스가 우울증 초기의 자의식이 특이한 겨울의 정서와… 그래서 불만의 겨울이 제게 와서 공명을 일으킵니다.”라고 생각과 마음을 편지로 전했다. 그런데 문병란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몇 년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김수영 시인의 시 「마케팅」(1962. 5. 30. 작)에서 마지막 행에 사용한 “(면도날!)”을 발견하게 되었다. → “4항목 4항목 4항목…… (면도날!)”

 

  * 존 스타인벡의 『불만의 겨울』: 도덕 불감증적인 사회인식과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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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12-02-24

불만의 겨울

 

 

  바람도 좀 불면서

  모호한 것들 사이에서

  나도 꼼지락거리며 살아가는 겨울

  아파트 경비원인

  나는 예전에 아버지가 주인이었고 젊은 내가 점원이었던

  식료품가게, 그 점포가 없어지고 슈퍼마켓 체인점이 들어선 건물

  앞길, 쌓인 눈을 이른 아침에 쓸다.

  차들이 굴러가고 사람들이 지나다.

 

  나는 칸나를 기르던 아버지는 아니지만,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하여’ 돈 탈 때마다 멈칫거리는 아이들을 보다가

  나는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그 사람은 아버지 같아, 나는 깊은 정을 둘 수가 없었다. 그 사람에게.’

  그랬던 것일까? 그들은?

 

  아버지는 어떻게 면도를 했을까?

  해질 무렵에 잠시 집에 들어온 나는

  세면기 위 거울 속 얼굴 희끗희끗 달려있는 구레나룻에

  면도날이 무서워 하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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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03:06.메. 박석준-시집(이은봉교수).hwp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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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버지와 우리집 정원의 칸나. img449

아버지와 우리집 정원의 칸나. img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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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4 오전_광주 운암동에서 출근길. News1 박지현 기자

  2024-01-24 오전_광주 운암동에서 출근길. News1 박지현 기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1월 24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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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 - 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Our Discontent)-1963

  존 스타인벡 - 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Our Discontent)-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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