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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낭만주의 (6) 그림 속 사람 / 박석준

나의 신시 115-1 그림 속 사람

나의 낭만주의 (6)

2008-08-02 (토)

박석준 /

원작 요약 <카페 버전>_시집 버전 ( 겁던 / 스무)

그림 속 사람

 

 

  뜨겁던 낮이 다 지나간 시간

  8월의 역 대합실 벽의

  그림들 속엔 사람이 걷고 있다.

  소통이 단절된 건 채 1년이 안 되었나.

  스무 살의 모습이

  뇌리를 흐른다.

  그림 속의 사람들처럼

  그림같이 정지해 있는

  그 사람을 불러내고 싶다.

  역사의 대합실에서 머뭇거릴 때마다

  언제나 한 얼굴이

  그림처럼 길을 떠난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한때는 일상의 주요 관심사였는데…….

  아직도 나는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기차는 곧 떠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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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 ∽ 2008-09-06 (맑고 /20세의 얼굴스무) <원작>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작가의 의도를 감안하지 않고 ‘맑고’/‘20세의 얼굴,’ 생략 교정>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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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2008-08-02 (토) 혹은 2008-08-02. 광주시 광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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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글의 색깔과 어휘의 사용(어휘를 넣거나 빼거나 배열함)

  나(박석준)는 「그림 속 사람을 불러내고 싶은 날」<원작>을 2008년 9월에 완성했고 이것을 2009년에 『석사학위 작품집』에 수록했다. <원작>은 첫 시집 출판과정에서 요약되어 「그림 속 사람」으로 만들어졌고 「그림 속 사람」이 시집에 실렸다. 두 버전은 화자인 “나”에 관한 이야기인데, 얼른 보면 내용이 같다고 여겨질 테지만 섬세하게 보면 매우 다르고 경향도 다르다. <원작>은 아방가르드 경향으로 창작한 것이지만 「그림 속 사람」은 낭만주의 경향이 짙다. 이 차이점은 “나”라는 인물(의 성격)의 형상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원작>에는 아방가르드 경향을 낳는 몇 가지 장치가 숨어 있다. <원작>의 “나”는 만나고 싶은 ‘그 사람’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소통이 단절된” 처지에 놓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 단절된 시간이 “채 1년이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난다는 기대를 한다. 그리하여 역에 갔다. “맑고 뜨겁던 낮”에(기차의 출발 시간에 맞춰) 사람을 만나려고 역 대합실에 도착했다. “맑고 뜨겁던 낮”은 단지 날씨만을 알리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어서 마음이 “맑고 뜨겁던” 상태임도 알리기 위해서 선택한 말이다.

  “소통이 단절”되어서 그리워하게 되었고, 떠올리게 된 것이 “모습(사람의 생긴 모양)”만이 아니라 “얼굴” 즉 “20세의 얼굴”이다. 요약된 「그림 속 사람」에서는 작가의 이런 의도를 감안하지 못한 까닭에 “얼굴”을 생략해버린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역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맑고 뜨겁던” 마음은 사라지고 “20세의 얼굴”이 뇌리에 떠오른다. 뇌리에 흐르는 “20세의 얼굴”은 실체가 아니므로 “그림 속에서 걷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 뇌리와 그림, 두 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과거의 인물로 정지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합실의 그림 속에선 걷고 있는 사람의 형태라도 볼 수 있어서 그 성격이 다르고, 이런 성격 때문에 화자는 “그림 속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 사람’을 역에서 찾을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기차는 곧 떠날 텐데…….”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나”는 왜 이렇게 행동을 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어째서 “아직도 나는 무언가/잘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이런 상황이 있게 되었는가? “나”는 왜 역에 간 것일까?

  글의 흐름으로 보아 “나”는 만나고 싶은 ‘그 사람’에게 소통할 수단이 없다(즉 “나”에겐 그 사람의 핸드폰 전화번호가 없다). “나”가 만나고 싶은 ‘그 사람이 낮에 역에 온다.’라는 정보를 제3자가 “나”에게 알려줬다. 그리하여 “나”는 기분이 맑고 감정이 뜨거워진 채로 역에 간 것인데 기차가 개차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그 사람은 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거나 그 사람이 생각을 바꿔서 생긴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생각을 바꾼 거라면 “나”에게 정보를 줬다는 사실을 제3자가 ‘그 사람’에게 알려줘서 그런 것이다, 라는 것도 원인으로 포함된다. “나” 때문에 그 사람이 역에 안 간 것이라면, 그 사람은 도대체 나에게서 무엇이 못마땅한 것인가? 내가 이번에도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이런 생각을 “나”가 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무언가/잘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라는 생각엔 ‘자신을 탓함’뿐만 아니라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성찰’과 실존하고 싶은 욕망도 담겨 있다. “아직도 나는 무언가/잘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라는 생각은 ‘내가 이번에도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그 사람이 여전히 생각한다.’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나”는 그 사람과는 오늘 아무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1년 전쭘부터 그 사람이 나하고의 소통을 단절했기 때문이다.

  <원작>은 현대사회에서의 부조리와 인간관계에서 나타난 불균형 또는 부적절함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림 속 사람」은 이런 몇 가지 어휘들이 생략됨으로써 “나”가 단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우울함에 젖어 그림 속 사람을 불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멜랑콜리에 젖은 사람’으로 형상화했다.

  뇌리에만 흐르는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으므로, 그림 속에만 움직이고(걷고) 있는 사람처럼 정지해 있다. 이런 점에서 “뇌리”와 “그림 속”은 사람의 움직임을 알 수 없는 곳이 되는데, 그림 속 사람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서 불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원작>은 ‘그 사람’이 역에 보이지 않음으로써 “맑고 뜨겁던” 심정이 시간을 타고 흘러갔고 나를 성찰하게 했음을 알려준다. 자책’과 ‘나의 현 처지에 대한 자각’과 ‘실존 의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증법적으로 무비즘 기법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그림 속 사람」은 요약되고 “맑고”와 “20세의 얼굴,”을 생략됨으로써 “나”가 쉽게 우울해하고 멜랑콜리한 존재이다, 라는 것만을 강하게 느끼게 할 뿐이다(낭만주의 경향을 강조하고 있다).

  ‘말을 전할 수 없다.’라는 점에서 뇌리의 그 사람은 그림 속 사람과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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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나(박석준)는 사람을 만나러 2008년 8월 2일(토요일)에 광주역에 갔다. 못 만나고 대합실 벽에 붙은 ‘맑은 낮 해변을 연인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싶어졌지만, 해변의 사람들이 정지해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사진 속 사람들처럼 과거 인물로 정지해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나에게 생긴 일을 생각하다가 8월 8일에 시 형식으로 글을 써서 ‘그림 속 사람을 불러내고 싶은 날’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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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시 115

<원작> 2009-09-06 (맑고 겁던 / 20세의 얼굴무 / 문득 뇌리를)

그림 속 사람을 불러내고 싶은 날

 

 

  맑고 뜨겁던 낮이 다 지나간 시간

  8월의 역 대합실 벽의

  그림들 속엔 사람이 걷고 있다.

  소통이 단절된 건 채 1년이 안 된

  20세의 얼굴, 스무 살의 모습이

  문득 뇌리를 흐른다.

  그림 속의 사람들처럼

  그림같이 정지해 있는

  그 사람을 불러내고 싶다.

  역사 대합실에서 삶이 머뭇거릴 때마다

  언제나 한 얼굴이

  그림처럼 길을 떠난다.

  그 사람 무엇을 하고 있는 지가

  한때는 일상의 주요 관심사였는데…….

  아직도 나는 무언가

  잘못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기차는 곧 떠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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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2011-05-05 오후 11: 26. 《시와시》에 보내는 작품.hwp

= 『시와시』 7호/2011여름호 (2011.06.01. 푸른사상)

(+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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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40730_1548_역 대합실

  20140730_1548_역 대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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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광주역 전경

  2022 광주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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