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30), 상징주의 (15) 지난날 ― 2008년_(원작/석사 버전) / 박석준

나의 신시 110 / 110-1 지난날 ― 2008년_(원작/석사학위 버전)

나의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30), 상징주의 (15)

2008--04. 봄

박석준 /

나의 신시 110-1

<원작 교정작> 112-1. 2009-06-01 (/졸  즈/혼 먹었)

지난날 ― 2008년

 

 

  내가 40대였던 2006년, 벌써 40대가 된 제자 몇 사람을 겨울에 만났다. 시간은 기억 몇 개와 부딪치면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날 나의 난시 더욱 심해졌지만.

 

  피카소 소리도 듣지 못했을 텐데……. 열 살 된 아들이 그린 그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갈길이없다.) 피카소 같았다. 2008년의 종이 위엔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들이 만화로 재생되어 있을 뿐 길은 없었다.

 

  2007년 여름, 고양이 밥을 마당에 내놓은 사람은 모성을 잃은 늙은 어머니였다. 수염을 빳빳이 세운 동네 큰 고양이가 어머니의 작은 고양이를 힘으로 내쫓고는 밥을 빼앗아 먹었다.

 

  열 살 된 꼬마는 아홉 살 때 아빠를 졸라 산 치즈피자를 저 혼자 먹었다, 아빠는 꼬마의 다운된 컴퓨터 게임을 재생시키려고 컴퓨터를 수리중인데. ―저리 가, 망할 것! 큰 고양이를 쫓는 어머니의 소리가 컴퓨터를 파고들었다.

 

  어머니의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큰 고양이는 갈 길을 찾아 나갔다. 2008년 봄 50대인 나는 병실에 와 있었다. 뇌일혈로 말없는 어머니를 나의 난시는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갈길이없다.) 어머니 뇌리에는 이 말만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

2008-07-06 ∽ 2008-09-06 ( /졸라 치즈/혼자) <원작>

 2009-06-01 오전 11:36. 석사학위작품집-박석준2-1.hwp (더/졸  즈/혼 ) <원작 교정>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

.

나의 신시 110

<원작> 112. 2008-09-06 ( /졸라 치즈/혼자)

지난날 ― 2008년

 

 

  내가 40대였던 2006년, 벌써 40대가 된 제자 몇 사람을 겨울에 만났다. 시간은 기억 몇 개와 부딪치면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날 나의 난시는  심해졌지만.

 

  피카소 소리도 듣지 못했을 텐데……. 열 살 된 아들이 그린 그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갈길이없다.) 피카소 같았다. 2008년의 종이 위엔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들이 만화로 재생되어 있을 뿐 길은 없었다.

 

  2007년 여름, 고양이 밥을 마당에 내놓은 사람은 모성을 잃은 늙은 어머니였다. 수염을 빳빳이 세운 동네 큰 고양이가 어머니의 작은 고양이를 힘으로 내쫓고는 밥을 빼앗아 먹었다.

 

  열 살 된 꼬마는 아홉 살 때 아빠를 졸라 치즈피자를 저 혼 먹었다, 아빠는 꼬마의 다운된 컴퓨터 게임을 재생시키려고 컴퓨터를 수리 중인데. ―저리 가, 망할 것! 큰 고양이를 쫓는 어머니의 소리가 컴퓨터를 파고들었다.

 

  어머니의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큰 고양이는 갈 길을 찾아 나갔다. 2008년 봄 50대인 나는 병실에 와 있었다. 뇌일혈로 말없는 어머니를 나의 난시는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갈길이없다.) 어머니 뇌리에는 이 말만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

2008-07-06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 /졸라 치즈/혼자) <원작>

= 『시로 여는 세상』 29호, 2009 봄호(2009-03-01)

(+나무와 두 아이, 두 아이와 나)

.

.

실제상황

    2008-04. 봄 광주시 (유동, 기독교병원, 푸른마을)

.

.

Ⅰ. 작가의 삶을 형상화한 시에서의 구도와 표현

  「지난날 ― 2008년」은 <카페 버전>을 포함해서 3개의 버전이 세상에 남았다. 이 중 「지난날 ― 2008년」의 <원작=시로 여는 세상 버전>과 <석사학위 버전>은 “지난날 ― 2008년”이라는 제목과 어휘에서 난해성, 즉 아방가르드가 확실하게 시작된다. <카페 버전>은, 첫 시집에 실렸지만 <원작>이 요약된 까닭에, 특히 중요한 부분이 생략된 까닭에, 제목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지고 난해성이 사라져서 모더니즘 경향의 시로 변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원작>과 <석사학위 버전>에서 “지난날 ― 2008년”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지난날 즉 2008년’이다. 나(박석준)는 2008년 9월 6일에 <원작>을 썼고 나의 어머니(=“어머니”)는 2009년 4월에 사망했다. 그리하여 어머니와 내가 만난 시간이, 특히 어머니가 전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존재한 2008년이, ‘지난날’이 되고 만다. 이것을 예감한 까닭에 나는 제목을 “지난날 ― 2008년”이라고 붙인 것이다. 의식이 없으면 “나갈길이없다.”도 없다. 어머니는 200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쓰러졌고 다음날 의식을 잃었다. 그러고는 2009년 4월 5일에 의식이 돌아와 나에게 말을, 결국 유언이 되고 만 말(‘알았다, 밥 거르지 말고 잘 먹어라’라는 13개의 소리)을, 남기고 다음날 세상을 떠난다. <원작>은 2009년에 어머니가 사망할 것임을 예감하여 내가 쓴 시 형식으로 된 일기이다. 예감 때문에 나는 이 일기를 쓸 때 어머니가 2009년에도 살아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요약되었기 때문에 <카페 버전>에서 이런 나의 마음이나 의도는 짐작할 수 없다.

  <원작>과 <석사학위 버전>은 첫 부분과 끝 부분에 “난시”라는 말이 있어서 “지난날 ― 2008년”이라는 제목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두 가지 버전에서는 “난시”가 ‘어머니가 살아았기를 바라지만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불안’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렇게 구도를 짠 속에서 “모성을 잃은 늙은 어머니”는 ‘세상을 곧 떠날 듯한,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 육체적 성질을 잃은 늙은 어머니’란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원작>과 이것을 교정한 <석사학위 버전>에서 “2007년 여름”은 “큰 고양이”가 “빼앗아 먹었다”, “열 살 된 꼬마”가 “저 혼자 먹었다”가 의미를 지닌 시간으로 남았는데, “큰 고양이”와 “열 살 된 꼬마”는 “혼자 먹었다””는 동일한 행동을 한 동일한 성격의 일을 한 것이 된다. <원작>과 <석사학위 버전>에서 “2008년 봄”은 “게임의 캐릭터들”이 “나갈길이없다.”, “어머니”가 “나갈길이없다.”라는 상태여서 “어머니”가 “ 생명력 잃은 “게임의 캐릭터“ 같은 존재가 되었음, 즉 사물 혹은 하나의 현상으로 남아 있는 시간이다. “큰 고양이”는 “갈 길을 찾아 나갔다.”라는 점에서 생동하지만 “어머니”와 “게임의 캐릭터“는 생동하지 못한다. “나의 난시”는 ‘2006년 겨울’에 더 깊어져서 2008년 봄으로 왔다. 이것은 ‘어머니에게 죽음이 곧 올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온 ‘나의 불안한 마음’이 2006년 겨울에 더욱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

.

Ⅱ. 「지난날 ― 2008년」과 무비즘, 아방가르드

  「지난날 ― 2008년」은 3가지 버전이 세상에 나왔다. 이 중 「지난날 ― 2008년」의 <원작>과 이것을 교정한 <석사학위 버전>은 아방가르드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나는 ‘수정하여 요약된 <카페 버전>에도 이런 면이 있다.’라는 말은 할 수 없다.

  <원작>과 이것을 교정한 <석사학위 버전>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2006년 겨울, 제자들을 만났는데, 기억과 부딪치면서 나의 난시는  심해졌다.

  2007년 여름, 어머니가 고양이 밥을 마당에 내놓았다.

    큰 고양이가 밥을 빼앗아 먹었다.

    9살 꼬마는 피자를 저 자서 먹었다,

    아빠는 컴퓨터를 수리 중인데

    큰 고양이를 쫓는 어머니의 소리가 컴퓨터를 파고들었다.

    큰 고양이는 갈 길을 찾아 나갔다.

  2008년 봄, 10살 꼬마(아들?)는 종이 위에 컴퓨터 게임 캐릭터 그렸는데, 나갈길은없었다. 그래서 화자(=아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뇌일혈로 말없는 어머니를 보러) 나는 병실에 왔다. 나의 난시는 말없는 어머니를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나갈길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겨울에 제자들을 만난 공간은 알 수 없어서 이 두 작품에서 단절된 4가지 것이 즉, ‘마당’, ‘컴퓨터’, ‘종이’, ‘병실’이 연관성을 가지면서 실제로 어떤 인물에게 사건을 생성하는 공간이 된다. 이 4가지 공간이 연관성을 가지면서 어떤 인물에게 시간을 흘려내는 일은 이 글(의 사람들) 말고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원작>과 <석사학위 버전>이 품고 있는 아방가르드이다. 이 두 버전에는 “나”를 “난시”가 심해진 인물로 첫 부분에 설정함으로써 “나” 자신과 “어머니”에게 ‘나갈 길이 없다.’ 또는 ‘나 갈 길이 없다.’라는 복선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이 상황이 ‘내가 잘못 본 상황’이 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상징한다. ― 난시(亂視)에 ‘밖에서 들어오는 광선이 눈의 망막 위, 한 점에 모이지 않아서 물체를 명확하게 볼 수 없게 되는 눈의 상태’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요약된 <카페 버전>에선 “2006년 겨울에 나의 난시는  심해졌”다는 시간이 빠져버려서 “난시”의 의미가 희석되고 상징이 사라졌다.)

  ‘(휘둥그레졌다 /빼앗아 먹었다 / 어머니의 소리가 컴퓨터 파고들었다 / 길을 찾아 나갔다)’는 무비즘 기법의 표현이다. 그렇지만 “꼬마”의 그림에는 “나갈길은없었다”, “나”의 뇌리엔 ‘어머니가 (―나갈길이없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움직임이 없는’ 상황임을 암시한, 무비즘과는 반대되는 표현이다.

  한편 이 글에서 “나”가 “꼬마”의 “아빠”인지 알 수 없게 인물이 설정되어 있다(“나”가 “아빠”가 아니라면 등장인물은 4인이 된다). 그리고 ‘말없다’와 “나갈길이없다”라는 표현은, 나에게 ‘어머니는 살아있으면서도 부재한다.’라는 상황 판단이 있음을 끄집어내게 한다. 이것들은 아방가르드에 해당하는 기법이다.

*

  <원작>과 <석사학위 버전>은 나(박석준)에게 2006년 겨울부터 2008년 봄까지 생긴 일을 담고 있는 실화이다. 나는 미혼이다. 글에 등장하는 “아빠”는 나의 동생이며 “꼬마”가 피자를 먹고 있는 곳은 2007년의 광주 유동 박제방이다. 2008년 2월 말에 나는 푸른마을로 이사하여 동생과 함께 지냈다. 나는 이 아파트에서 꼬마의 그림을 본 직후의 3월에 어머니가 있는 병실에 가서 말없는 어머니를 보았다.

.

.

Ⅲ. 나의 시론

4. 시간의 색깔

  ‘너’는 ‘나’의 인식대상인 한편 ‘나’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사물과 세계, 상황, 사람 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인식주체로서의 내가 ‘너’ 중에서 최근에 더욱 의식하게 된 것은 사람이다. 사람 중에서도 ‘말’이 없는 사람이다. 위의 글 「지난날 ― 2008년」은 인식의 주체로서 “나”와 인식 대상인 “꼬마”, “큰 고양이”,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길에 대한 “나”의 시각이 “난시”라는 조건 속에서 투영된 것을 형상화해 본 시이다.

  이 시의 첫 연과 끝 연에는 “난시”라고 하는 “나”의 건강상태가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런 건강상태 사이에 2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나갈길이없다”라는 두 번의 “나”의 인식행위가 표현되어 있다. 물론 이는 불명료한 주변의 상황과, “나”의 인식의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 선택하고 배열한 것이다. 여기서 “난시”는 “기억 몇 개와 부딪치면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 이후에 심해진다.

  그런 점에서 “난시”는 단순히 ‘시력상의 곤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식상의 어려움’, ‘불명료한 인식력’ 또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을 내포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갈길이없다”라는 표현은 불명료함, 명확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말에 띄어쓰기를 안 한 까닭은 불명료함이라든가 ‘나갈 길이 없는 상태’를 시각화시킬 뿐만 아니라, 내재되어 있는 이중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이 시에서 ‘나’는 “난시”와 “나갈길이없다”라는 표현을 통해 모순되고 불명료한 인식 상황을 겪는 존재가 된다. 말하자면 ‘나’는 ‘상황에 대한 명료한 인식의 어려움’을 겪는 존재로 남게 된다. 어느 것으로 해석하든 ‘없다’라는 부정, 부재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앞에서 판단한 것은 그림이 추상적이라는 것에, 뒤에서 판단한 것은 “나” 자신의 삶과 그것의 원인이 되는 환자의 현상태 및 미래에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을 그린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 어느 곳엔가 길을 만들어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식이 불명료한 상태인 환자의 생각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보면, 이 시의 마지막 연에 나오는 “난시”는 어머니의 현상태에 대한 “나”의 부정 내지는 거부의 욕망에 가까운 것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살기 위해 큰 고양이가 밥을 빼앗아 먹고 “어머니의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갈 길을 찾아 나갔다”는 것은 하나의 알레고리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자연과학이 과도하게 발달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사회의 발달 속도와 범주는 한 개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넓다. 존재의 정체성 문제 등 개인적 삶의 어두운 면만이 아니라 계급적 소외와 갈등 등 사회적 삶의 어두운 면도 낳고 있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이다. 다음의 예는 존재조건의 변화에 몰린 한 인물의 일상을 그려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삶의 존재의미와 진정성을 담아보려는 의도에서 쓴 시이다.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

.

.

나의 신시 110-2

(원작 교정작을 요약 재교정)_시집 (졸라 치즈)

지난날 ― 2008년

 

 

  피카소 소리도 듣지 못했을 텐데……. 열 살 된 아들이 그린 그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갈길이없다.) 피카소 같았다. 2008년의 종이 위엔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들이 만화로 재생되어 있을 뿐 길은 없었다.

 

  2007년 여름, 고양이 밥을 마당에 내놓은 사람은 모성을 잃은 늙은 어머니였다. 수염을 빳빳이 세운 동네 큰 고양이가 어머니의 작은 고양이를 힘으로 내쫓고는 밥을 빼앗아 먹었다.

 

  열 살 된 꼬마는 아홉 살 때 아빠를 졸라 치즈피자를 저 혼자 먹었다, 아빠는 꼬마의 다운된 컴퓨터 게임을 재생시키려고 컴퓨터를 수리 중인데. ―저리 가, 망할 것! 큰 고양이를 쫓는 어머니의 소리가 컴퓨터를 파고들었다.

 

  어머니의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큰 고양이는 갈 길을 찾아 나갔다. 2008년 봄 50대인 나는 병실에 와 있었다. 뇌일혈로 말없는 어머니를 나의 난시는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갈길이없다.) 어머니 뇌리에는 이 말만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졸라 치즈) <교정작을 편집자가 요약한 재교정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

.

(초고) 2008-07-06

지난날 ― 2008년

 

 

  내가 40대였던 2006년

  40대가 된 제자 몇 사람을 겨울에 만났다.

  시간은 기억 몇 개와 부딪치면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의 난시는 그날 더 심해졌지만.

 

  피카소 소리도 듣지 못했을 텐데…….

  열 살 된 아들이 그린 그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갈길이없다.

  피카소 같았다.

  2008년의 종이 위엔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들이 만화로 재생되어 있을 뿐

  길은 없었다.

 

  2007년 여름

  고양이 밥을 마당에 내놓았던 사람은

  모성을 잃은 늙은 어머니였다.

  수염을 빳빳이 세운 동네 큰 고양이가

  어머니의 작은 고양이를 힘으로 내쫓고는

  밥을 빼앗아 먹었다.

 

  열 살 된 꼬마애는

  아홉 살 때 아빠를 졸라

  치즈피자를 저 혼자서 먹었다,

  아빠는 꼬마애의 다운된 컴퓨터 게임을

  재생시키려고 컴퓨터를 수리중인데.

  ―저리 가, 망할 것!

  어머니의 소리가 컴퓨터를 파고들었다.

 

  어머니의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큰 고양이는 갈 길을 찾아 나갔다.

 

  2008년 봄 50대인 나는 병실에 와 있었다.

  뇌일혈로 말없는 어머니를

  나의 난시는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갈길이없다.

  어머니 뇌리에는 이 말만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

2008.07.07. 11:51.메. 지난 날-2008.hwp (초고)

(= 2008-07-06 오후 8:48. 지난날-1)

.

.

사진

[회전]img359. 광주시 유동 박제방 어머니

  [회전]img359. 광주시 유동 박제방 어머니

.

파블로 피카소 - 곡예사 가족_(1905)

  파블로 피카소 - 곡예사 가족_(1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