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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39)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 / 박석준

나의 신시 101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_(석사 버전)

나의 실존주의 모더니즘 (39)

2007-12-01

박석준 /

<원작>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

 

 

  여자가 사라진 겨울, 참 더러운 길을 따라 걷는다.

  막 밤이 시작된 길, 전자상가 앞 로터리는

  전날까지 내린 눈이 질퍽질퍽하다.

  차가운 바람이 움츠릴 수조차 없게 걸음을 재촉한다.

 

  저 바람, 교회가 있는 동산 곁을 지나가다가

  철로와 만나는 곳에서 흩어지겠지.

  (길, 그 길가 서점에서

  수녀가 된 그녀는 더러 시집을 샀다.)

 

  내 발길을 따라 들어온 교회 앞 포장마차들 속엔

  불빛이 가득하다. 둘러보니

  자리 옆에 장미를 놓아둔 사람이 있다.

 

  서른 살은 되었을까 백열전등 불빛에

  얼굴이 장미처럼 빨갛다, 떨고 있는 손과 몸,

  들어온 지도 1분은 넘었을 텐데…….

 

  “알겠다. 내가 마련해 본 게 10만 원이다.”

  핸드폰 소리 요란하다. 차도 

  눈송이처럼 흩날리면 얼마나 좋을까.

 

  어둠 속엔 그 길로 난 민가와 상가에서 흘러드는

  불빛들이 안겨 있다. 잔뜩 가슴을 찌르고 가는

  차 소리, 바람 소리,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을 가고 있다. 겨울이 지나면 수녀도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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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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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가상(2007-12-01.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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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인물이 사라짐’과 인생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원작>은 연상이 상황의 비약을 가져오는 역할 한다. “더러운”이 연상시킨 “더러”(여자 → 수녀가 됨 → 수녀가 사라질 거다), “ 길을 가고 있다”가 연상시킨 ‘사람이 사라질 것이다’가 그 실례이다.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원작>은 별로 상관성이 없을 듯한 “수녀”와 “시집”과 “돈”이 시공간을 흘러간다. “수녀”는 “나”가 아주 오래 전에 “여자”로 (또는 애인으로) 만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수녀”가 등장하는 시간은 순수하고 신비한 장면을 형성한다. 한데 곧바로 “포장마차” 안의 삭막한, 돈에 억압받는 현실로 장면을 바꿔버린다. 현대 자본주의 도시 사회에서 어떤 인물(들)이 살아가는 옹색한 시간을 만들어낸다. 이 현실에서 “나”는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즉 실존할 수 있는 삶을 생각하게 된다. <원작>에 펼쳐진 상황은, “여자가 사라진 겨울”(여자와 헤어진 겨울)을 회상하고는 몸을 녹이려고 “나”가 “포장마차”로 들어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글은 여자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여자가 사라질 것으로 끝낸다. 이것은 화자가 여자를 그리워함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그리워함이 사랑과 관련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여자는 시를 좋아했고 수녀가 되었다는 것만 제시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화자가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에 “교회 앞 포장마차”로 들어갔는데, 뜻밖에 “돈”에 관련된 말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고는 “차도로 돈이/눈송이처럼 흩날리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연상을 흘린다(‘돈이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흘러드는 자본주의 사회’를 소망한다). 화자가 매우 가난하거나 “돈” 때문에 구속되었음을 알려준다. 즉 화자에겐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지만, 매우 고달픈 삶을 살아간 시간이 현재까지 꽤 오래 지속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현실 사회에서 불안해하며 돈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살아가는 수녀의 삶 같은 것’은 자신에게는 환상(幻想)이라고 잊으려고 한다. (← “겨울이 지나면 수녀도 사라지겠지.”)

  하지만 “나”가 청년인지 기혼인지 알 수 없으며, 글에 흐르는 시간이 얼마 동안인지도 알 수 없다. <원작>에는 시간이나 인물의 구체성과는 별 상관이 없이도 되는 모더니즘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 글은 가난한 소시민의 굴절된 삶을 드러낸 글이다. 이 글은 흘러가면서 “장미를 놓아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 즉 ‘사람은 가고 사랑한 옛 시간만 남게 된 사람’임을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어둠 속으로 흘러드는 불빛들”이란 이미지 어휘를 통해 현재의 고달픈 시간도 아름다운 시간임을 암시한다. 어려운 상황은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를 시도하게 하여 굴곡 있는 삶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상황이 지나면 여러 가지를 시도한 날들이 아름다운 시절로 남기 때문이다.

  “여자가 사라진 겨울”에서의 “여자”는 수녀가 되기 이전 화자가 자주 만났던 사람이다. 화자가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문제ᅟᅡᆨ 없다. ‘여자가 사라졌다’는 ‘여자가 수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마지막에 “수녀도 사라지겠지.”는 ‘수녀의 죽음’을 의미한다. 즉 수녀가 죽음 가까이에 있는 상태임을 암시한다. “포장마차” 속에서 화자는 인생을 생각하고 있다. 나의 인생은 타인에게 시간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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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세 버전의 시간의 움직임과 기법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은 <원작>이 『석사학위 작품집』(2009)에 수록되었다. 이것을 개작하여 동명의 작품 <문학마당 버전>(2011)이 『문학마당』에 발표되었는데, <문학마당 버전>이 <카페 버전>(2013)으로 개작되어 시집에 실림으로써 동명의 3개의 버전이 남게 되었다. 3가지의 작품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포장마차에서 화자가 “돈”에 쫓기는 젊은 사람을 봄으로써 ‘돈이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흘러드는 자본주의 사회’를 연상하는(소망하는) 것이다.

  <원작>에는 시간이나 인물의 구체성과는 별 상관이 없이도 되는 모더니즘 기법이 사용되었다. <원작>에 펼쳐진 상황은, 길 위에서 “여자가 사라진 겨울”(여자와 헤어진 겨울)을 회상하고는 몸을 녹이려고 “나”가 “포장마차”로 들어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카페 버전>은 <문학마당 버전>의 시간을 생략해버린 요약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마당 버전>처럼 무비즘 기법을 시도했지만 마지막 상황이 포장마차 안에서 내다본 장면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서 <문학마당 버전>에 비해 기법의 선명도가 떨어진다. “어여 퇴근하시오. 애기 배고파 가출하겄소.” 한 1연과는 어긋나게 퇴근 직후에 화자가 포장마차로 가버린 상황으로 끝나버려서 완성도가 떨어진다. 그런 까닭에 모호성을 낳으면서 아방가르드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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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작을 요약 개작>_(시집 버전)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

 

 

  “어여 퇴근하시오. 애기 배고파 가출하겄소.”

  “어이 이거 가지고 가. 아까 따로 주문해 둔 치킨이거든.”

  후배 병우와 친구 상우가 문 밖까지 나왔는데

  12월, 한 인물의 얼굴들이 지나간다.

 

  여자가 사라진 겨울, 참 더러운 길을 따라 걷는다.

  막 밤이 시작된 길, 전자상가 앞 로터리는

  전날까지 내린 눈으로 질퍽질퍽하다.

  차가운 바람이 움츠릴 수조차 없게 걸음을 재촉한다.

 

  저 바람, 성당이 있는 동산 곁을 지나가다가

  철로와 만나는 곳에서 흩어지겠지.

  철길 따라 데이트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수녀가 되고 싶어요, 했는데.

 

  성당 앞 포장마차들 속엔 불빛이 가득하다.

  둘러보니 오뎅 파는 집, 자리 옆에 장미를 놓아둔

  사람이 있다. 서른 살은 되었을까. 백열전등 불빛에

  얼굴이 장미처럼 빨갛다, 떨고 있는 손과 몸,

  포장마차에 들어온 지도 1분은 넘었을 텐데…….

 

  “방 구해라, 겠어? 내가 마련해 본 게 백만 원이다.”

  핸드폰 통화 소리 요란하다. 차도로 돈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면 얼마나 좋을까.

 

  어둠 속엔 지붕 낮은 집에서 켜놓은 불빛들이

  안겨 있다. 잔뜩 가슴을 찌르고 차 소리, 바람 소리,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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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 2008-09-06 <원작>

∽→ ∽ 2011-02-04 <개작>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개작을 요약 개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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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개작>_(문학마당 버전) (움릴)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

 

 

  “어여 퇴근하시오. 애기 배고파서 가출하겄소.”

  “어이 이거 가지고 가. 아까 따로 주문해 둔 치킨이거든.”

  후배 병우와 친구 상우가 문 밖까지 나왔는데

  12월, 길 위에서 생각이, 한 인물의 얼굴들이 지나간다.

  (이젠 몇 개의 장면으로만 남아있는. 죽었지만. 2년 전에…….)

 

  여자가 사라진 겨울, 참 더러운 길을 따라 걷는다.

  막 밤이 시작된 길, 전자상가 앞 로터리는

  전날까지 내린 눈 질퍽질퍽하다.

  차가운 바람이 움추릴 수조차 없게 걸음을 재촉한다.

 

  저 바람, 교회가 있는 동산 곁을 지나가다가

  철로와 만나는 곳에서 흩어지겠지.

  (길, 그 길가 서점에서

  더러 시집을 샀었지, 수녀가 되고 싶어 했는데.)

 

  교회 앞 포장마차들 속엔

  불빛이 가득하다. 둘러보니 오뎅 파는 집

  자리 옆에 장미를 놓아둔 사람이 있다.

 

  서른 살은 되었을까 백열전등 불빛에

  얼굴이 장미처럼 빨갛다, 떨고 있는 손과 몸,

  어온 지도 1분은 넘었을 텐데…….

 

  “겠어? 내가 마련해 본 게 백만 원이다.”

  핸드폰 소리 요란하다. 차도로 돈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면 얼마나 좋을까.

 

  어둠 속엔 지붕 낮은 집에서 켜놓은

  불빛들이 안겨 있다. 잔뜩 가슴을 찌르고

  차 소리, 바람 소리,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을 고 있다.

 

  며칠만 지나면 틴에이지거든. 혼자 있을 수 있어.

  근데 치킨 한 번만 먹으면 안 돼?)

  겨울이 지나면 수녀도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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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 2008-09-06 <원작>

∽→ 2007-12-04 ∽ 2011-02-04 오후 11:38. 《문학마당》에 보내는 작품-2.hwp <개작>

= 『문학마당』 34호/2011 봄호(20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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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7-12-04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

 

 

  여자가 사라져 갔던 겨울, 더러운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막 밤이 시작된 길

  전자상가 앞 로터리에

  전날까지 내린 눈이 질퍽질퍽하다.

  겨울보다 차가운 바람이

  움추릴 수조차 없게 걸음을 재촉한다.

  바람은 교회가 있는 동산 곁을 지나 뻗어 가다가

  철로와 만나는 길 어디에선가 흩어질 테지만.

  길, 그 길에서 더러는 수녀가 시집을 샀다.

  교회 앞 포장마차들 속엔

  불빛이 가득하다.

  그 안에는 주인 말고는

  장미를 곁에 둔 사람이 있다.

  서른 살은 되었을까?

  백열전등 불빛에 얼굴이 장미만큼 빨갛기만 하다.

  떨고 있는 손과 몸

  들어온 지도 1분은 넘었을 텐데.

  “알겠다. 내가 마련해 본 게 10만 원이다.”

  차도로 돈이 눈처럼 휘날리는 것 같다.

  어둠 속에는 그 길가에 난 민가와 상가에서

  흘리는 불빛들이 안겨 있다.

  잔뜩 찌르고 가는 차 소리

  간혹 부는 바람 소리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을 가고 있다.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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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22:33.메. 길을 걷다 보면.hwp (초고)

= 2007-12-09 오후 10:25. 길을 걷다 보면.hwp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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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눈 내리는 밤 포장마차1

  눈 내리는 밤 포장마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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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언덕 명동성당1

  눈 내리는 언덕 명동성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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