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10)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 박석준, 문병란

나의 신시 14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나의 실존주의 앙가주망 (10)

1979 / 1980

박석준, 문병란 /

<원작 교정 수정> (5, , )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박석준, 문병란

 

 

  담배를 권했던 친구가

  5 연기만 남기고 떠나갔다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그가 남긴 현기증을 안고

  스무 살의 소년인 나는

  술주정보다 먼저 실연을 배웠다

 

  숨어서 나눈 그 우정

  담배 연기 속에서 사라져 가고

  나는 그해 대학교 1학년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시 쓰고 싶었던

  슬픈 모방기 어질병을 안고

  나의 몸은 최루탄 속에서도

  꽃을 피웠고, 비오는 날이면 나는

  결강을 했다. 하얀색 빨간색

  불경한 진달래는 조심해야지

  형들은 감옥에 가고 나는 무서웠다

  나는 가슴이 멍멍하였다 군인 출신 대통령

  차례로 권좌에 앉았다 가고

  나는 술이 늘지 않았다

 

  담배 한 모금과 잔의 술

 

  손가락이 누우레져도 태우고 태워서

  나를 버리고 간 그 봄을 태우고 태웠다

 

  새벽 한 시의 레스토카페

  불은 꺼지고 영업은 끝나고

  주머니 속 동전은 떨어지고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나를 세웠다

  , 나는 누굴 사랑할 수 있는가?

 

.

2013.05.31. <원작> (그는, , )

2014.06.01. 16:30. 카페 가난한 비_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5, , ) (원작 수정작 초고)

https://cafe.daum.net/poorrain/F2u2/34

2016.11.09. 17:41. 박석준 시집 본문.pdf (교정: 5, , ) <원작 수정작>

= 시집_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2016.12.02. 문학들)

.

.

2013.05.31. <원작> (그는, , )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박석준, 문병란

 

 

  담배를 권했던 친구가

  그는 연기만 남기고 떠나갔다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그가 남긴 현증을 안고

  스무살의 소년인 나는

  술주정보다 먼저 실연을 배웠다

 

  숨어서 나눈 그 우정

  담배 연기 속에서 사라져 가고

  나는 그 해 대학교 1학년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시 쓰고 싶었던

  슬픈 모방기 어질병을 안고

  나의 몸은 최루탄 속에서도

  꽃을 피웠고, 비오는 날이면 나는

  결강을 했다. 얀 색 간 색

  불경한 진달래는 조심해야지

  형들은 감옥에 가고 나는 무서웠다

  나는 가슴이 멍멍하였다 군인 출신 대통령

  차례로 권좌에 앉았다 가고

  나는 술이 늘지 않았다

 

  담배 한 모금과 잔의 술

 

  손가락이 누우레도 태우고 태워서

  나를 버리고 간 그 봄을 태우고 태웠다

 

  새벽 한 시의 레스토카페

  불은 꺼지고 영업은 끝나고

  주머니 속 동전은 떨어지고

  횡단보도의 빨간 불이 나를 세웠다

  아, 나는 누굴 사랑할 수 있는가?

.

2013-05-26.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박석준’ (초고: 2013-05-26에 문병란 시인께 쓴 편지에 삽입됨)

2013.05.31. 문병란 시인의 답장편지 <원작>

= 2013.09.27. 09:16. 카페 가난한 비_박석준 시인 보오. -정리 (원작 원본)

https://cafe.daum.net/poorrain/Ewta/100

.

.

실제상황

    1979년과 1980518 즈음(1411),

    1980518 이후19932(4126),

    200592324일 현재 시점. 광주시 유동 스토리 카페 앞(7)

.

.

.해설

쇼윈도 거리를 걷는 현대의 햄릿 -

  박석준 시의 화자는 매우 예민하다. 그는 불안을 감지하는 데 탁월한 촉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도처에서 소외를 경험한다. 이러한 소외가 화자로 하여금 이와 같은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는 박석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첫 번째 시집인 카페, 가난한 비(푸른사상, 2013)에 이어 3년만의 시집이다. 김백겸은 카페, 가난한 비에 대해 비가 내리는 도시의 풍경, 소시민으로서의 삶, 고독한 예술가였던 고흐에 투사되어 있는 내면의 우울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시집 역시 그러한 평가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결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백겸이 말한 내용 중에 그의 시는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있어야 이해하기 쉽다고 한 것은 박석준의 시를 읽는 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 박석준, 문병란과 같은 시를 볼 때 콘텍스트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다.

  문학사에 준하여 미학적 성과를 가늠하는 성격의 글은 그 태생의 특징혹은 한계로 인해 텍스트에 나타 특이한혹은 특수한표현들을 찾는 데 관심을 쏟는다. 형식주의 비평이 대두된 이래, 이러한 방식의 비평은 비평의 처음이자 끝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데리다(J. Derrida)가 문제 삼았듯, “너무 지나치게 남발되는 저자의 죽음과 그 누락은 문제다. 물론 그의 말처럼 애초에 텍스트가 아닌 것은 없다. 심지어 시인 본인의 입으로 직접자신의 생애에 대해 구술하 것을 듣는다 해도 언어라는 매개시인 본인 또한 언어로 말을 하는 순간 언어의 법칙에 따라 기억을 조직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언어는 생각의 도구가 아니라 본질인 셈이다를 통하게 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텍스트차원을 벗어날 수 없다. 더군다나 시는 특수한 형식의 말하기다. 따라서 시를 논하는 데 있어 저자역시 텍스트 차원에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발화 국면에는 언제나 시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저자의 죽음으로 사태를 단순화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고민해야 할 것은 한쪽으로 수렴시킴으로써 상황을 미니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를 논하는 데 있어 어떻게 시인의 자리를 마련해 주느냐이다. 그렇지 않고 쉬운 길을 택할 때 박석준의 시를 이루는 축 중의 한 축이 망각되거나 정당한 취급을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박석준의 시가 음울한 도시의 풍경과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우울감고독으로 그려내있는 데는 그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갖은 고통을 겪은 형제들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교사로 근무하며 전교조 운동에 참여(떠나는 사람의 노래 연습, 집회)하는 등 결코 적지 않은 고통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 박석준, 문병란이라는 시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시인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흔적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화 목소리 숲 속의 비)는 고백에서처럼, “담배 연기가 주는 현기증“5”, “연기만 남기고 떠나간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시를 쓰고 싶었던 슬픈 모방기로부터 그의 시는 시작되었다. 담배 연기는 사라지지만 여전히 현기증은 남아 시인으로 하여금 그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시인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그는 그렇게 유령처럼 떠도는 기억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시를 쓰게 된 것이다. 박석준 시인의 상실감“5”, “최루탄”, “감옥”, “군인 출신 대통령”(그것도 차례로”)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 민주화라는 말에 수렴시키는 것은 그 섬세한 결을 놓치는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민주화타자에 대한 사랑과 공존에의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면, 박석준 시는 확실히 민주화의 실현에 온 마음을 쏟은 결과라고 단언할 수 있다.

김청우 시인, 문학평론가

.

.

콘텍스트(시와 나) : 창작 동기와 과정

  순천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나(박석준)2005925일엔 육신과 처지가 너무도 메말라버렸다. 조직에서 소외된 존재임을 또 확인하고 순천에서 퇴근했지만, 923일 밤 1030분 광주행 버스를 탔고 광주 유동에서 밤이 깊어지도록 배회했다. 그러고는 새벽 1시경에 스토리 카페로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카페 건너편 유동 박제방으로 가는 인도에 있는 자판기 커피를 뽑을 생각을 했으나 호주머니엔 동전 한 푼 없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박제방에 돌아갔다. 유동 거리에서는 생각들이 여러 면으로 교차되었다. 나는 925일 새벽에 글 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을 썼다.

  나는, 몸이 너무 약해서 군대 가지 못했고, 사랑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스무 살 땐 두 여자가 찾아와서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나, 스물두 살 대학교 1학년 때인 4월에 형사들이 집을 수색했고 그 후로 두 여자가 떠나버렸다. (→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그 후로도 몇 여자가 나에게 마음을 두어 찾아왔는데 무엇이 싫었는지 떠나갔다. 교육 민주화 운동을 해갔지만, 복직교사라는 처지 때문에 조직에서 소외되었고, 잊고 싶어서 20043월에 기항지인 목포에서 떠나 아는 사람 없는 순천으로 갔다. 그러나 순천에서도 복직교사라는 처지 때문에 교사들로부터 소외되었다. 2005, 48살이 되었는데, 이곳 조직에서 소외된 나는 나의 삶(인생)을 고뇌했다. 9월에는 너무 괴로워서 세 잔의 술을 마셨고 귀가 후 메모 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을 썼다. 그날 순천에서 친구가 함께 가자고 하여 합석하게 된 술자리에서 첫 담배와 첫 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옛 생각에 젖어든 까닭이었다. 나는 1979년에 흔이라는 아이와 같은 반이었는데, (5월로 기억되는데) 그 아이가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 나를 찾아와서 담배를 권했다. 친해지고 싶어서 바로 담배를 사고 귀가하여 거울을 보면서 담배 피우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1년 후 5월에 흔이 다시 담배를 권해서 함께 피웠으나 그 이틀 후 나와 헤어졌다.

  이러한 나의 경험을 투영한 메모를 정리한(따라서 글의 현재 시점이 2005924일인) ‘초고2013년에 편지에 삽입하여 문병란 시인(선생님)께 보냈다. 편지 교류를 통해 두 사람이 2013531일에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원작: 그는, , )을 만들어냈다. 문병란 시인이 사망한 후 2016.11.09.일에 원작의 세 어휘를 수정하여(5//) 시집에 수록했다.

  이 글은 20059월 현재 시점에서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글에는 나(박석준)의 살아간 시절을 반영한 이야기가, 세 부분으로 1411(1979년과 1980518 즈음), 4126(1980518 이후19932), 7(200592324) 전개되었다.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을 두 곳에 둔 영화 연출 기법인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 연출 기법이 사용되었다.

  문병란 시인이 시적 효과를 위해 3, 4연에서 대학교 1학년 스무 살의 인물로 바꿨다(실제의 나는 스물두 살이지만). 그리고 마지막 행 , 나는 누굴 사랑할 수 있는가?를 첨가했다.

 

  나와 문병란 시인은 25년 전의 담배 한 모금과 세 잔의 술, 술집에서 그 밤의 메뉴(2013-09-05 ), 2편의 시를 공동으로 창작했다.

.

.

(메모) 2005.09.25. 오전 2

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

 

  처음으로 담배 한 모금과 커피 한 모금을 함께 하고서 마취되어 환각제를 먹은 듯 어지럽고 몽롱한 느낌을 받았던 날, 그 날 나는 젊었다.

  24*가 흐르던 젊은 날이었다. 사람 생각이 간절한 까닭이었으나,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이기도 하였다. 그 사람은 떠난다는 말을 남겼고 그 이틀 후에야 그 말이 내게 전해졌으나, 내가 그가 지내던 집을 물어서 찾아갔을 때 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3년 뒤 다시 돌아왔을 때엔 나는 애연하고 있었고, 다른 어느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돌아온 그날 나를 비로소 완전히 떠날 수 있었다. 아직 젊은 날이었지만.

  그리워하던 사람은 가고 담배와 커피가 내 곁에 남아 25년이 더 흘렀다. 포장마차의 길가 테이블에 앉아 나는 다시 담배를 피웠다. 25년 전 피우던 담배는 잊을 수 없다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그 중 한 사람은 25년 전 나와 똑같이 첫 담배의 어지러움과 몽롱함을 말하면서

  “준이형도 그랬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25년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그를 만난 지 2년이 채 못 되지만, 그는 젊은 날의 방황과 모험과 순수한 지향을 아직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8년 전에 처음 만나 친분을 나누던 사람은 25년 전의 자신의 젊은 날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나도 그때 담배를 처음 피웠는데 어지럽지 않았어.”

라고 말하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첫 담배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테이블의 화제는 소주로 바뀌었고, 잎새주니 참이슬이니 하는 소주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능력껏 술을 비우곤 하였다. 그리고 화제가 군대 이야기로 옮아가 세 사람은 비슷하거나 다른 경험을 처음으로 나누어 갔다. 나는 경험이 없는 까닭에 그저 새로운 것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술잔엔 손이 가질 않았다. 군대 이야기까지 해서 세 가지 화제가 두 시간을 흐르게 하였다.

  8년 전부터 알게 된 사람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이제 또 한 사람 만나러 갈 건데, 자네도 아는 사람이니까 같이 가지 않겠어?”라고 하면서 자리를 정리했다.

  그는 나하고 시간을 갖고 싶다고 바로 전날 물어왔었는데, 나하고만의 자리가 아닌 시간을 꾸려가 놓고 또 다른 자리를 제시하고 있었다. ‘현재 만나는 사람과도 시간을 제대로 못 꾸려내는데 또 무엇을 바라는가?’ 내겐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쩌면 군대 이야기에 나의 반응도가 낮아서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새 사람을 만난다 해도 그와 나만의 자리는 없다. 그리고 지금 자리는 과거로 가버리는 것인데, 그럼 지금의 나는 그저 또 하나의 자리에 앞서 시간을 맞추기 위한 코스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인가? 자기가 만나자고 해놓고, 사람을 더 데리고 온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담배를 한 대 더 피우다가, 난처해진 나의 위치를 생각하고 나는 귀가를 선택했다. 세 잔의 술을 마시고서 광주로 향하는 터미널에 와서 이어지는 자리도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이라고 전송한 내 문자에 대해 그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과는 젊은 날이 곁에 있지 않았다.’

  생각들을 하면서 2311시를 넘어선 밤 나는 광주의 밤길을 걷다가, 새벽 2시에 레스토 카페를 찾아갔다. 커피를 주문했으나 없다고 했다. 그냥 돌아서 나와 아직 반짝이는 네온 불빛들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알 수 없었다.

          --/05.9.25. 오전 2

  * 24: ‘23의 오타임.

.

2005.9.25. 07:09. 카페 가난한 비_25년 전의 담배와 세 잔의 술 (메모 원본)

https://cafe.daum.net/poorrain/4Ps/72

.

.

.

사진

담배 피는 나. 1982-04. img311

  담배 피는 나. 1982-04. img311

.

전대앞에서_1980_05_392509_2

  전남대 앞 5.18 계엄군 _1980_05

.

5.18광주_최루타_201805170494712652_3

  5.18광주_최루탄_201805170494712652_3

.

전남대 인문대 1호관_size_1513057919_9437

  내가 강의를 듣던 전남대 인문대 1호관_size_1513057919_9437

.

광주시 유동. ‘스토리 카페’ 있던 곳 건너편. _DSC5497

  광주시 유동. ‘스토리 카페있던 곳 건너편. _DSC5497

.

담배 피는 나. 광주시 사직골 사람들. 2005-11-05. PHOTO0511050021

  담배 피는 나. 광주시 사직골 사람들. 2005-11-05. PHOTO0511050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