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시 (창작년도)

나의 무비즘 (9), 실존주의 앙가주망 (6), 상징주의 (1)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 박석준

나의 신시 9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나의 무비즘 (9), 실존주의 앙가주망 (6), 상징주의 (1)

1977

박석준 /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2020년에 출판된 자서전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에 실린 글이다. 시 형식으로 된 이 글과 글이 든 시집을 잘 감상하려면 장미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두 얼굴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 조심하고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2020년에 출판한 것인지 생각하기를 바란다.

.

.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1

  12, 밤이 시작된 무렵. 불빛들, 언덕 쪽으로 걸었다.

  우리 집을 스친 길과 성당이 꼭대기에 솟은 언덕 밑을 스친 길이 있는 오거리, 언덕 밑 길 포장마차들 중 한 곳.

  그 안의 백열전등 불빛 아래 장미꽃처럼 빨간 준수한 얼굴에 코트 깃을 세운 사람, 그 옆에 놓인 빨간 장미.

  그 옆에 서점 상윤 형이 전해주라는 검은 가방을 놓았다.

  “김장은 안 했겠구나. 이십만 원이다, 대학교 진학해라. 일이 있어 나는 집에 오기 어렵다. 어머니 잘 모셔라.”

  건강해져야 할 텐데, 눈 조심하고……. 빨간 장미를 든 나는 집 쪽으로 걸었다. 간혹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형은 쫓기는 자일까? 형이 모금하여 나를 살리고, 신문에 내 옆얼굴이 났는데, 산다는 건 무엇일까? 장미, 얼굴들!

 

      2

  둥근 얼굴 여자가 마루 앞에 서서 보고 있었어. 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는 스무 살 소년을. 누구세요? 물었어.

  1월에 신문을 보고 편지한다, 성남에서 공장 다닌다,

  3월에 열아홉 살, 본명은 연, 광주로 돌아왔다, 사랑해요,

  했는데, 5월 아침 일요일을 무엇 때문에 찾아왔을까?

  수국 같은 성숙한 여자! 난 치료 중인데. 빵을 안 먹네!

  공원에 갈까요? 제과점에서 나왔어. 사진 찍을 때만 넌

  곁에 있었지. 네가 권한 영화관엔 편히 서 있을 곳 없어,

  피로해서 갈게요, 했어. 그때까지 넌 전혀 묻지 않더군.

  이발사가, 넌 구레나룻이 멋진데 너무 빼빼해, 했을 때,

  그 여자, 집에 와서 울고 갔어, 의 목소리가 들렸지.

  여름날 하교하여 가방을 간신히 들고 들른 수예점에서

  누나의 말에 상자 위에 둔 현에게 보낼 편지가 생각났어.

  열린 방문, 가버린 상자. 들어가 형광등을 꺼버렸지.

  친구랑 튀어나갔지만, 넌 집 앞에서 얼굴을 못 들었어.

  나는 고2 소년을 들켜버려서 눈물이 맺히는데, 들킨

  너는 말없이 눈물을 쏟아내고는 언덕 쪽으로 달아났어.

  눈과 가슴뼈가 흔들려 5미터도 못 뛰어가 괴로웠지.

  상사병 나 초췌하고 불안하다고 쓴 네 친구의 편지,

  가을 해 질 녘 충장로. 내게 다가온 건 포동포동한 외모,

  변한 얼굴, 기억에 없는 목소리였어. 산수동 달동네

  불빛들 몇, 안쓰러워 들어간 언덕길, 골목이 갈린 곳에서

  여기서부터는 따라오지 마세요, 사감한테 들키면 혼나요,

  소리만 했지. 갈 테니 회사 기숙사 전화번호 적어줘요,

  했을 때까지 넌 아무것도, 안부조차도 묻지 않았어.

  큰길 전화박스에서 소리가 났어. 없는 번호입니다.

  ‘거울 속 왕자님을 바라보는 거지 소녀한 카드.

  11예비고사 날 모처럼 온 말이 마지막일까?

 

      3

  옆얼굴이 잘생겨서 오빠 삼고 싶다며 열여섯 현, 네가

  네 사진을 담아 연과 같은 날 편지로 찾아왔어.

  유채꽃 같은 고2 소녀! 2인 나 내 사진을 보냈지.

  나에게 사랑해요한 여자한테 일기와 편지가 든 상자를

  들켜버려서, 현에게서도 떠나겠어. 라고 썼어. 그러나

  너는 사랑해요란 말을 처음으로 보냈지.

  ‘대학생이 되겠네요. 취직해요.’ 예비고사 날 온 편지.

  다음해 2월 토요일, 서울 전농동 달동네 긴 언덕길에서

  대문 앞에 두 개의 방이 바짝 붙은 집을 찾고

  캄캄해진 얼마 후에 노크해 언니에게 전했어.

  내일 열두 시에 창경원 앞에 파란 풍선 들고 있겠어요.

  열한 시부터 두 시간 기다렸어. 답장은 계속 왔지.

  네 목소리를 들은 적도 얼굴을 직접 본 적도 없는,

  4월에 네 답장을 받고, 며칠 후 형사들이 수색했어.

  내 상자 속 편지들까지. 그러곤 며칠 후 편지가 왔어.

  회사의 29살 오빠가 날 사랑해요.

 

      4

  11월에 형이 체포됐다. 상실, 결여, 나의 고독, 카오스적 나가 5·18을 흘러가고, 김제영이 다가와 함께 본 백장미*.

  스물다섯 살 1월에 우리 집을 잃어, 여관방으로 이사했다.

  졸업하여 스물여섯, 2월 말인 오늘 다시 구직하러 다닌 후, 나는 슬퍼졌다. 나는 왜 가벼운 것일까?

  무기수인 형, 장미의 곁에 두 얼굴! 산다는 건 무엇일까?

 

 

  * 잉케 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원제 백장미, Die Weisse Rose), 박종서 역, 청사, 1978.

.

2020-01-01 2020-03-17 오전 10:00 <원작>

= 시집_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2020.05.25. 푸른사상)

.

.

실제상황

    1978.12. (큰형과 헤어짐, 3) : 1

    1977.1. (연의 편지),

    1977.5. (연이 찾아옴).

    1978.11.7. (예비고사 날, 연의 편지) : 2

    1977.1. (현의 편지),

    1978.11.7. (예비고사 날, 현의 편지),

    1979.2. (현의 집 찾아감),

    1979.4. (중앙정보부에서 집 수색. 헤어짐) : 3

    1979.11. (형 체포됨),

    1980.5.18. (제영과 만남, 2),

    1982.1. (여관으로 이사),

    1983.2. (졸업, 구직 실패,) : 4

.

.

. 작가와 시집과 관련한 해석

  시 형식을 취한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은 네 부분으로 이야기가 구성됐다. 네 부분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어떤 인물을 따라 흘러가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네 부분 중 첫 부분과 끝 부분에 현재 시점(이중적인 현재 시점)으로 표현된 까닭이겠으나, 글 전체로 보면 끝 부분이 현재에 해당한다. 이렇게 시 형식의 글에, 어떤 인물을 따라 시공간이 움직여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표현한 경향(기법)무비즘이라고 한다.

 

1. 창작 배경 : 섬세하게 이해하려면

  글에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의 죽음으로 인해 형의 삶의 의미나의 삶의 문제들을 고뇌해오다가 나(박석준)는 글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을 썼다. 이 글은 시 형식으로 표현한 실화이다. 실제로 있었던 사람(실명 인물)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 행동 등)과 당시에 일어난 나의 생각을 그대로 적은 글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보다 섬세하게 이해하려면 다음 세 가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⓵ 실화인데 형이 무슨 사건으로 체포되었으며 어찌하여 무기수가 된 것인지를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장미두 얼굴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비고사 날은 당시의 학생들과 사회적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2. 창작 의도, 상징

  이 글은 나(박석준)의 삶의 한 시절에 실제로 흘러간 것(, 생각, 사건, 사람 등)을 재구성한 실화이다. 하지만 독자에겐 다만 시 같은 형식으로 된 한 편의 글일 뿐이다. 나는 나의 삶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시간의 두 가지 색깔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이 글을 썼다. 이 글의 장미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상징이며, “언덕은 고난의 인생길을 상징하는 배경이며,

 

3. 시점/구성/수법

  이 글의 현재 시점은 구직에 실패한 날인 4연의 오늘이다. 4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이 중 21산다는 건 무엇일까? 장미, 얼굴들!”이라는 상념 뒤에 떠오른 과거 일을 요약 진술한 것이다. 그런데 3장미의 곁에 두 얼굴! 산다는 건 무엇일까?라고 끝맺은 4의 상념 속의 과거 일이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가 처음과 끝 부분에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실존의 의미를 묻는 실존주의 철학을 반영하였다.)

  이렇게 이 글엔 한 인물을 따라 시공간이 흘러가는 구성 방식과, 1, 4(끝 연)장미”, “얼굴”, “산다는 건 무엇일까?”라는 말들로 연결되어 내용상 운율을 이루는 표현으로 ‘(장미, 얼굴을 통한 형상과 색깔이 흐르는 시각)이미지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시키는 무비즘 수법이 사용되었다.

 

4. 제목 장미두 얼굴의 의미

  하지만 세밀하게 보면 1 부분의 형은 쫓기는 자일까? 신문에 내 옆얼굴이 났는데, 산다는 건 무엇일까? 장미, 얼굴들!”에선 자문하지만, 4 부분의 무기수인 형, 장미의 곁에 두 얼굴!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선 에게 물어보는 듯한 뉘앙스를 남기고 있다.(실존에 관한 의문이라는 점, 실존주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선 같지만.)

  그리고, 1에선 장미, 얼굴들”,이 두 사항이 별개의 것이라고 여겨지고 몇 개의 얼굴인지 범주가 분명하지 않아서 구체성이 떨어지는데 4에선 두 얼굴이라 하여 범주가 분명하다. 게다가 바로 뒤에 산다는 건 무엇일까?”라고 말하고 있어서 두 얼굴이 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세밀하게 볼 때 장미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 행동, 가치 있는 것)상징하는 말로 해석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제목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이라고 정했다.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은 우선 의 얼굴이다. (나는 시 형식의 글에서 장미라는 어휘를 1987년에 일상 1-1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일상 1-1도 실화로 구성한 글이다.)

 

5. ‘시간(사건)의 진행과 사물(장미, 수국, 유채꽃)심상

  나는 이 글을 싸는 이야기(14 부분) 속에 장미백장미가 있고, 싸인 이야기(23 부분)장미하고는 별 관련이 없는 듯한, ‘수국유채꽃이란 이미지가 부여된 두 여자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형태로 구성했다. 그리고 장미동생을 사랑하는 또는 동생의 행복을 바라는마음의 표시로 형이 준 것으로 짐작되게 해놓고, “장미(동생)”에게 온 후엔 한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매체가 되게 했다. 장미여자를 사랑하는 마음도 포함된 듯하게 표현했다.

  애초에 나는 사랑’, ‘저항운동’, ‘성남, 변덕스러움’, ‘쾌활, 발랄함암시하려고 이 꽃들(빨간 장미, 백장미, 수국, 유채꽃)꽃말 상징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사건(시간)이 진행되어서 장미’, ‘수국’, ‘유채 스스로 의미를 변화시켜 버렸다.

  한 날에 두 여자의 위문편지를 받게 되어 에게 새 유형의 시간이 형성되고 그것이 모데라토로 흘러갔는데, “를 찾아오는 적극적인 행동을 실현한 때부터 두 사람의 시간이 흔들거린다.

  “옆얼굴을 말하면서 오빠로 삼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며 접근했던 과의 시간도, “사랑해요란 말을 받으면서 두 사람의 시간이 흔들거린다.

  다음해(1978) 11예비고사 날의 편지를 받고는, “에겐 수국’, ‘유채 마지막, 불안’, ‘의혹, 불안심상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이 체포되어 무기수가 된 후엔 장미지향하는 인생길(또는 저항운동)’의 심상으로 남는다. “장미에게 아름다운 것, 사랑의 꿈, 가지 못한 길심상으로 남는다.

 

6. 눈 조심하고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은 이 글만 본 사람에겐 눈 조심하고라는 말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조심하여 길을 살펴 가고라는 의미가 먼저 새겨질 것이다. 반면, 시집 전체 글을 읽은 사람에겐 눈 조심하고볼 수 있는 왼쪽 눈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혹은 누군가의 눈을 조심하고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7. 예비고사 날편지/여자 이야기 삽입 의도

  “예비고사 날에 두 여자의 편지를 받은 편지에서 거울 속 왕자님을 바라보는 거지 소녀가”, 대학생이 되겠네요. 취직해요.”라는 두 말을 짙게 새겼다. 집이 가난하여 이 공장에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에는 거울 속, 왕자님, 거지라는 어휘, 특히 거지라는 어휘가 들어있고 에선 현도 가난한 집 사람이다.’는 사실을 알게 한 취직해요.”가 있어서이다. 게다가 는 이 두 사람이 예비고사란 날짜에 편지가 전해지길 바라고 편지를 썼다는 것을 곧 깨달았을 가능성이 짙다.

  “거울 속사회적 처지가 다른 곳’, “왕자님사랑하는 사람이면서 귀한 사람’, “거지가난하면서 사회적 처지가 좋지 않은 사람을 나타내려고 사용했다. “대학생취직이란 말과 상반되는 말, ‘사회적 위치가 높은 곳으로 인식하게 되어서 사용했다. 이렇게 보면 , 사랑하는 사람이 곧 나하고는 처지가 다른 곳으로 간다라는 생각에서 온 절망감을 표현한 말이다.

  1970년대 예비고사 ()는 이렇게, 20대를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에게 어떤 위치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인식되었고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 “같은 가난한 사람에겐 불안’, ‘소외가 파고드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은 만나주지도 않으면서 편지를 계속 보냈고, 무슨 생각으로 회사의 29살 오빠가 날 사랑해요.”라고 써서 편지를 보낸 것일까? 편지가 내 상자 속 편지들까지” “형사들이 수색한 며칠 후에 왔다는 사실이 여러 의미로 해석되게 만든다.

  모르게 헤어짐을 당한 에게 남게 된 두 여자는 상대방의 처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한, 자신을 위치가 낮고 가난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알려준,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한 여자라고도 해석된다.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하고 이 만들어낸 시간은 실제로 사랑한 시간이고, “하고 이 만들어낸 시간도 비록 내가 목소리를 들은 적도 얼굴을 직접 본 적도 없이 끝났지만 서로 사랑한 시간이다. “하고 이 만들어낸 시간은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꿈(일장춘몽)의 시간, 의미 없는 시간이다, 라고 해석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나에게 스며든 여자로 남았고, “나를 스쳐간 여자로 남았다. 그런 까닭에 이 두 여자 또한 두 얼굴이다. 시간의 빛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내가 두 여자의 이야기를 삽입한 까닭은 이 주제를 의도적으로 강하게 형성해내려는 데에 있다.

 

8. 글의 의미/글의 경향

  이 글은 장미(사랑, 아름다운 것, 지향하는 인생길) 곁에 두 얼굴(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추구하는 사람과 자신의 의지가 흔들거린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한다, “두 얼굴자기 갈 길을 따라 흔들리지 않고 간 형의 얼굴(백장미 : 순수, 저항)’자기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나의 얼굴(빨간 장미 : 사랑, 사랑을 향한 열정)’로 귀결한다.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은 인물을 따라 시공간이 흐르고 사건들이 흘러서 무비즘 경향으로 표현해서 어떤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 글이다. 또한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산다는 건 무엇일까?”를 추적한 실존주의 경향의 글이다. 이 글은 이 글이 실린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전체 글을 읽어본 운동을 지향하는사람에게는 남민전 사건과 관련된 의 이야기가 중심 이야기가 되지만, 이 글만 떼어 놓고 생각한다면 형이 자기 길을 가다가 무기수가 된 사건이 부차적인 이야기가 되고, ‘사랑과 관련한 와 두 여자 사이의 사건이 중심 이야기가 된다. (박석준)이 관련된 사건명을 밝히지 않고 이 무기수가 된 이유를 쓰지 않은 건 이 두 가지 시각을 감안해서이다. 즉 시집 속의 흘러가는 시간 중의 한 사절의 이야기로도 이해되고 시집과는 별개로 한 작품으로도 이해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

.

글 밖 실화

  19771월 초에, 서울대병원에서 선천성 희귀 심장병 팔로4징후 수술을 국내 최초로 성공하여 나(박석준)에 관한 기사와 내 옆얼굴이 신문에 났다.(나는 331일엔 20살이 되는데 당시엔 이 병 환자의 99%20살이 되기 전에 사망했다.) 그리고 곧 소녀들로부터 편지가 왔고 라디오 방송에 나의 사연과 일기 내용이 소개되었다. 계림동 집에서 나에게 편지가 온 것을 본 형은 너도 이제 사회적 인간이 되었구나.”라고 간단하게 평했다. (나는 대학생이 된 후에야 형이 왜 그 말을 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형이 모금운동을 하여 나를 살려내지 않았다면 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해 1978년의 12월에, 형이 포장마차에서 나에게 대학 진학하라고 20만 원을 주고 나와 헤어졌다. 형은 그로부터 10년 후에 식구들이 사는 집(광주 유동 슬픈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형은 7년 후에 또 수감되었고 10개월 옥고를 치른 후엔 그냥 전사로 살아가다가 20177월에 세상을 떠났다. 2년 후 20196월에 나는 사경에 이르게 되어서 시집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를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형을 그리워할 사람으로 남기기 위해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등 글을 써갔다.

  19821월에 식구들이 계림동 집을 잃어 중흥동 장원여관으로 이사했다. 계림동의 큰길(중앙로)이 우리 식료품 가게와 계림파출소, 내가 다닌 고교를 스쳐가는데, 우리 가게 맞은편의 계림파출소에서 갈라진 길엔, 1977년엔 파출소 바로 옆에 제과점, 바로 앞에 허의원(→ 「국밥집 가서 밥 한 숟가락 얻어 와라)이 서 있었다. 이 중 19775월 일요일에 이 찾아와서 내가 데리고 간 곳이 이 제과점이다. 그런데 그 제과점에서 이 빵을 안 먹었고 나는 어떻게 데이트를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우리 가게 옆 상점에서 갈라진 길이 삼거리, 계림동오거리를 만들어냈는데,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에 나오는 오거리언덕(동산)에 지금도 성당이 솟아 있다.(지금은 우리 식료품 가게 있던 곳의 다섯 갈래 길을 계림동오거리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성당 앞 5갈래 길을 계림동오거리라고 불렀다. 우리 가게 있는 쪽 5갈래 길은 한 길이 동명동에 속했기 때문이다.) 우리 안집은 삼거리의 양쪽 길을 낀 두 번째 집이며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 삼거리의 오른쪽 길인 소로를 조금 따라가면 우리 집 맞은편에 만홧가게가 있고(→ 「) 우리 집에 딸린 술집이 있고, 30미터쯤 더 올라가면 언덕으로 가는 길이 있어서(→ 「언덕의 아이) 오른쪽 왼쪽으로 길이 갈라졌다. 대문 쪽으로 흘러가고 대문 앞에서 복개된 좁은, 에 나오는 도랑에서 나는 10살 때(1967년 장마철에) 고무신을 가지고 놀다가 놓쳐버렸다.

  1971(내가 중2 )의 파산으로 인한 빚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소로 쪽에 낸 술집의 뒷방으로 1975년에 이사했는데 이 뒷방에서 19761월에 심장병의 합병증으로 나의 눈을 다쳤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방으로 이사 왔고 나는 3월에 휴학했다. 하지만 나는 이 방에서 인생을 생각하거나 볼펜을 굴리곤 했고(→ 「생의 프리즈 절규), 여름이 되기 전에 이 방을 기어다니는 신체가 되어버렸다. 여름에 형이 데리고 간 서울대병원에서 생이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하여 결국 형이 각서를 썼고 12월 말경에 나는 임상용으로 심장병 수술대에 올려졌다.

  1978년 가을엔, 교육지표 사건으로 도피해야 한 삼형과 피정센터 언덕에서 헤어졌다. 나는 며칠 후인 117일에 예비고사를 봤고, 큰형은 12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에 나온 날에 언덕 아래 포장마차에서 나의 대학 등록금을 주었다.

  내가 대학생이 된 1979년에는 4월에 형사들이 안집을 수색했다. 그러고는 곧 나를 경찰서로 연행하여 취조를 하거나 내실로 끌고 가 가슴을 짓밟고 폭행을 몇 차례 했다. 한 형사는 내가 중간고사 시험 보는 것도 방해했다.

  1020일엔, 중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어머니를 끌고 남영동 대공분실로 간 것 같다는 말을 만홧가게 아저씨한테 들었다. 어머니와 작은형이 폭행을 당하고 전기고문을 받았고 박정희 대통령이 19791026일 밤에 서거하자 풀려났다. 197911월엔 남민전 사건으로 큰형, 삼형이 서울에서 검거됐다.

  결국 빚 때문에 1979년에 가게를 잃은 우리 식구들은 19821월에 계림동 안집도 잃어 중흥동 장원여관으로 이사했다.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오늘1983년에 졸업하여 2월 말경에 내가 구직하러 갔고 눈물을 흘린 날이다. 이날 구직하러 간 학교에서도 몸이 너무 허약하다(가볍다)는 이유로 나를 채용하기를 거절해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장원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곧 나에게서 나는 왜 가벼운 것일까? 산다는 건 무엇일까?생각이 일어났고 눈물이 흘렀다. 그러고는 나는, “몸이라도 성해야 할 텐데”(먼 곳 1), ‘마음 편히 먹고 1년 쉬어라.’ 하여서 보게 된 어머니의 슬퍼하는 눈빛에 슬퍼졌고, 어떻게든 구직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

.

사진

광주사직공원. 나-연-헌. 1977-05. img289

  광주사직공원. --. 1977-05. img289

    (‘이 찾아와서 제과점에 들른 후 사직공원에서. 서있는 남자가 나다.)

.

1983 년  2 월 전남대학교 졸업식 날 . [ 회전 ]img301

  1983 2월 전남대학교 졸업식 날. [회전]img301

.

망월동 아버지 묘 앞. 형 박석률-나-헌(뒤)-누나. 20220722_143811

  망월동 아버지 묘 앞. 형 박석률--()-누나. 20220722_143811

.

어머니-누나-나. img410

  어머니-누나-. img410

.

나의 명퇴를 기념하여, 재영-기한-나. 광주시. 1488329907937

  나의 명퇴를 기념하여, 재영-기한-. 광주시. 1488329907937

.

형 박석률. 20130226_박석준 선생님 시집출간기념 (34)

  형 박석률. 20130226_박석준 선생님 시집출간기념 (34)

    축사를 하고 있는 형. 나의 첫 시집 <카페, 가난한 비> 출판기념회(2013-02-26)에서.

.

장미. 20130226_박석준 선생님 시집출간기념 (1)

  장미. 20130226_박석준 선생님 시집출간기념 (1)

    나의 첫 시집 <카페, 가난한 비> 출판기념회(2013-02-26)에 놓인 장미.

.

장미. 20130226_박석준 선생님 시집출간기념 (8)

  장미. 20130226_박석준 선생님 시집출간기념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