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205 거리, 카페, 가난한 비에 움직이는 사람들
나의 무비즘 (163), 실존주의 아방가르드 (52), 이미지즘 (12)
2020-11-00
박석준 /
거리, 카페, 가난한 비에 움직이는 사람들
흐르는 천 위 다리 위에
여자의 얼굴이 황혼 쪽에 있다.
생각해보고 오세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젊은 남자가 불빛에 흔들리게 한다.
탁자 위에
꽃병에 갇힌 빨간 장미꽃들. 다리에서 만나고 있는
여자의 모습들이 어른거린다.
저는 왜 이럴까요? 아침에
한 파마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낮에
고치러 갔다가 그냥 머리만 잘라버리고 왔어요.
젊음은 그저 젊은 시간에 있으니까요.
저물녘의 이런 말은 아직 사라지지 못하고
우스운 장면이다, 만남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 눈길을 주고 있는 광경은.
다리에서 여자 얼굴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탁자 위에 여자의 말이 흘러갔다.
거리에서 가난한 비에 남자가
걸음이 둔탁해져 간다,
다리의 가로등 불빛에 카페의 불빛에
하얗게 밤으로 가을로 흔적으로 흔들리게 한다.
.
2022-03-16 ∼ 2022-12-20 오후 6:42 <원작>
= 2022-12-23 오후 12:42. 카페, 가난한 비, 거리에 움직이는 사람들, 무비이즘-선경-박석준-2022-12-17.hwp <원작 원본>
= 2023-01-09 오후 01:29.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박석준-2023-91-09-교-분석.hwp (원작 날짜)
= 시집_『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2023.03.20. 푸른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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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없음(가상: 2020-11-00. 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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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객관적 해석
이 글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카페에서 (합의하여) 이별한 남자가 거리에서 사랑의 흔적을 밟으면서 사랑의 아픔을 안고 번민하는 듯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하지만 이 글에서 흘려내는 정서를 멜랑콜리라고 단언하기엔 어렵고 플라토닉 러브의 아름다움이 주는 황홀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남자를 따라 시공간이 움직이는 무비즘 기법으로 전개한 이 글은 애매한 표현들(문장들)로 아방가르드를 만들어냈다. 이 글엔 쓸쓸함, 씁쓸함, 만족감, 깨끗함, 아름다움 등 다양한 이미지와 느낌, 간정, 정서, 분위기를 연출하는 몇 기법이 사용되었다.
* 이 글엔 주로 깨끗한 느낌을 주는 ‘시각적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가난한 비에/다리의 가로등 불빛에 카페의 불빛에/흔들리게 한다)
*상징:
. 다리 : 사랑과 이별의 교차점
.파마 : 사랑
*암시
사랑이 짐 (여자의 얼굴이 저녁노을 쪽에 있다)
‘괴로움’을 시각화 (흔들리게 한다)
사랑을 나누던 시간들 (갇힌 빨간 장미꽃들)
사랑하는 것을 단념함 (머리만 잘라버리고 왔어요.)
내적 갈등 (다른 곳에 눈길을 주고 있는 모습)
‘사랑의 아픔, 이별의 괴로움’을 암시한 시각화 (둔탁해져 간다)
*나열 : 밤으로 가을로 흔적으로
*비유 :
다리에서 만나고 있는 여자의 모습들 (꽃병에 갇힌 빨간 장미꽃들) → 꽃병에 갇힌 사랑
*애매성, 이중성
(카페, 문을 열고/들어오는 젊은 남자가 불빛에 흔들리게 한다.) → 카페가?/카페와?
*애매성, 이중성 : 남자의 의식의 흐름?/관찰자의 서술?
(저물녘의 이런 말은 아직 사라지지 못하고
우스운 장면이다, 만남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 눈길을 주고 있는 광경은.)
.
플라토닉 러브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 플라톤 사랑은 순수하고 강한 형태의 비성적(非性的)인 사랑을 말한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용어의 의미는 플라톤의 '대화' <향연>편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은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즉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진정한 플라토닉 러브란 마음과 영혼을 고무시키고 정신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짧은 기간 안에 플라토닉 러브는 영국 왕궁에서 특히 찰스 1세의 아내인 헨리에타 마리와 그 주변에서 유행하였다. 플라토닉 러브는 캐롤라인 시대의 몇몇 가면무도회의 테마로 유행하였으나 정치사회적 압력으로 쇠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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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22-03-16
다리와 카페 사이에 쉬어 간 가을
흐르는 천 위 다리 위에서
석양이 지는 쪽에 여자의 얼굴이 있다.
생각해보고 오세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젊은 남자가 불빛에 흔들리게 한다.
탁자 위에
꽃병에 갇힌 빨간 장미꽃들. 다리에서 만나고 있는
여자의 모습들이 어른거린다.
저는 왜 이럴까요? 아침에
한 파마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낮에
고치러 갔다가 그냥 머리만 잘라버리고 왔어요.
젊음은 그저 젊은 시간에 있으니까요.
오후의 이런 말은 아직 사라지지 못하고
우스운 장면이다, 만남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 눈길을 주고 있는 모습은.
다리에서 여자 얼굴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탁자 위에 여자의 말이 흘러갔다.
거리에서 남자가
걸음이 둔탁해져 간다.
다리의 가로등 불빛이, 카페의 불빛이
하얗게 밤을 가을을 가고 있다.
.
2022-03-16 오후 4:50 작 (초고)
= 2022.09.02. 23:35.내메. 시간의 색깔은-61.hwp (초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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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우스운 장면이다, 만남 속에 있는 ∼ 모습은.)
= 2005.08.29. 카페 가난한 비_26.카페에 쉬어 간 가들
― https://cafe.daum.net/poorrain/4Ps/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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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광주천변 다리 20170606_19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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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운암동 coffee 89. 20220511_22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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