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징주의 (9), 실존주의 앙가주망 (47) 길이 떠는 겨울_(석사 버전) / 박석준
나의 시 103 길이 떠는 겨울_(석사 버전)
나의 상징주의 (9), 실존주의 앙가주망 (47)
2007-12-02
박석준 /
<원작>
길이 떠는 겨울
클랙슨 소리를 좋아하지 않아
나는 지금 대합실에 있는 것인가
가끔, 애완견 털 냄새인가.
공장노동자가 러시아 여행 갔다 왔을 때처럼
장미꽃 향기 풍겨 왔다.
그 개, 날 풀린 일요일 아침
주인을 따라 조깅을 가더니
열시 경엔 주인을 끌고 돌아왔다.
마침내 겨울날 지구를 한 바퀴 돈
비가 내게 말했다. 이 도시가
발전할 필연성은 인위성에 있다.
어떤 게 사람이냐 사람이 얼어 죽어도
냄새나는 돈, 살 길 막막한
내 머릿속을 항상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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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 2008.09.06. 10:50.메. 박석준-08종합1.hwp <원작>
= 『석사학위 작품집』(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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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2007-12-0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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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해설
비극적 주체의 절망과 희망
― 박석준 시집 『카페, 가난한 비』에 대하여
시인 박석준은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 수많은 고통을 겪은 형제들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가족의 일원인 그는 저 자신 또한 전남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전교조운동에 참여하는 등 적잖은 고통을 감내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의 정서적 바탕에는 고통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지 않고서는 형성되기 어려운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가 깊게 깔려 있는 것이 그의 시이다.
이때의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는 거개가 침통한 표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의 이러한 정서는 심지어 멜랑콜리라고 명명되어도 무방할 정도이다. 멜랑콜리라고 불리는 비정상적인 심리는 그 범주를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 쉽지 않다. 그것이 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무료 등 어긋나고 비틀린 정서를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왜곡된 정서는 물론 자본주의적 근대에 들어 부쩍 만연해진 병적 심리 일반과 무관하지 않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소통이 단절된 시대, 공감이 사라진 시대의 정서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멜랑콜리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멜랑콜리는 일조량이 부쩍 줄어드는 가을에 훨씬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플러스의 양기보다는 마이너스의 음기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 멜랑콜리이거니와, 그것이 신생의 봄기운보다는 소멸의 가을 기운과 밀접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박석준의 시에 가을을 노래한 시가 유독 많은 것도 실제로는 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제목에 가을이라는 언표가 들어가 있는 시만 하더라도「가을비 ― 물컵 속의 담뱃재」, 「가을, 도시의 밤」, 「가을의 오전」, 「세련되지 못한 가을비」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그의 이 시집이다.
고독은 소외의 적극적인 모습이거니와, 그것이 과도할 정도로 경쟁을 우위에 두는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물론 이때의 고독은 우울로, 곧 멜랑콜리로 전이되기 쉽다. 멜랑콜리의 핵심 정서는 우울이거니와, 이때의 우울이 고독이나 소외, 상실이나 좌절 등의 정서와 상호 침투되기 쉽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박석준이 자신의 시에서 “비는 전날에도 왔지만/…… 내가 가는 길 위에 우수가 들어선다”(「마지막 출근투쟁」)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다음의 시도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예이다.
그의 시의 기본 정조가 멜랑콜리라는 이름의 죽음의 정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슬픔,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무료 등 어긋나고 비틀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그와 더불어 우수나 우울이 실제로는 심화된 슬픔이나 설움으로부터 비롯되기 마련이라는 것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 정서가 자본주의적 근대에 이르러 끊임없이 부추겨진 욕망이 지속적으로 억압되는 데서 기인하는 왜곡된 정서, 병적 정서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특히 자본 자체에 대한 시인 박석준의 비판 역시 매우 도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선 “구르는 차 안에서/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바라본다. 다시 나는/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나’를”(「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과 같은 그의 시를 통해 확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이 얼어 죽어도/냄새나는 돈, 살 길 막막한/내 머릿속을 항상 떠다닌다”(「길이 떠는 겨울」) 라고 하며 자본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은행이거니와, 은행과 관련해 자신이 느끼는 멜랑콜리를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과 같이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 그이기도 하다.
―이은봉 시인,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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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메시지와 형상화
「길이 떠는 겨울」은 석사학위 작품집에 실린 <원작>과 시집에 실린 <개작>, 이 두 개의 버전이 있다.
<원작>에는 러시아 여행하고 온 노동자에게서 애완견 냄새와 장미꽃 향기가 풍긴다고 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매우 언밸런스한 두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원작>에서는 화자가 “대합실”에 있다.
<개작>에선 “(길)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실업 노숙자)을 “여자에게 안긴 옷 입은 개”가 “힐끗 보다 지나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의 삶’을 개의 삶보다 못한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어 이 체제를 비판하는 알레고리를 품고 있다. <개작>에선 화자가 “역역으로 가는 길”에 있다.
그런데 두 버전에 공히 “지구를 한 바퀴 돈/비”라는 상징이 있으며 이것이 “이(자본주의 사회의) 도시가/발전할 필연성은 인위성에 있다.”는 것을, 즉 정권의 정책(인위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상징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실존’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문제 제기하고 휴머니즘의 필요성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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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작>_(시집 버전)
길이 떠는 겨울
그 개, 날 풀린 일요일 아침
주인을 따라 조깅을 가더니
열 시 경엔 주인을 끌고 돌아왔다.
마침내 겨울날 지구를 한 바퀴 돈
비가 내게 말했다. 이 도시가
발전할 필연성은 인위성에 있다.
어떤 게 사람이냐. 사람이 얼어 죽어도
냄새나는 돈, 살 길 막막한
내 머릿속을 항상 떠다닌다.
사람들 오가는 역으로 가는 길
길이 떠는 겨울, 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
여자에게 안긴 옷 입은 개가 힐끗 보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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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 2008-09-06 <원작>
∽→ 2013-01-06 오전 6:01.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3년1월5일-2(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hwp <개작>
= 시집_『카페, 가난한 비』(2013.02.12.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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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작 초고)
길이 떠는 겨울
그 개, 날 풀린 일요일 아침
주인을 따라 조깅을 가더니
열 시 경엔 주인을 끌고 돌아왔다.
마침내 겨울날 지구를 한 바퀴 돈
비가 내게 말했다. 이 도시가
발전할 필연성은 인위성에 있다.
어떤 게 사람이냐. 사람이 얼어 죽어도
냄새나는 돈, 살 길 막막한
내 머릿속을 항상 떠다닌다.
오가는 사람들 속에 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
클랙슨 소리를 좋아하지 않아
나는 지금 역 대합실에 있는 것인가.
가끔, 옷을 예쁘게 입은 애완견 털 냄새인가,
공장 노동자가 러시아에 여행 갔다 왔을 때처럼
장미꽃 향기 풍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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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5 오후 11:26. 박석준-시집 최종본 2012년9월22일-1(맹문재).hwp (개작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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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2007-12-04
길이 떠는 겨울
클랙슨
차 소리 좋아하지 않아서
대합실에 있나
공장노동자 러시아 여행 갔다 왔을 때처럼
가끔, 애완개 털 냄새인지 장미꽃 향기 풍겨 왔다.
그 개, 날 풀린 일요일 아침 주인을 따라 조깅 가더니
열시 경엔 주인을 끌고 돌아왔다.
마침내 겨울날
지구를 한 바퀴 다 돈
비는 내게 말한다.
이 도시가 발전할 필연성은
인위성에 있다
어떤 게 사람이냐
사람이 얼어죽어도
냄새나는 돈
살 길 막막한
자 머럿속으로 항상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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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22:33.메. 길을 걷다 보면.hwp (초고)
= 2007-12-09 오후 10:25. 길을 걷다 보면.hwp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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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개 – 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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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기다리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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